중국에서 경혈 및 경락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책으로는 수당(隋唐)대 양상선(楊上善)의 『황제내경명당유성(黃帝內經明堂類成)』와 왕유일(王維一, 987~1067)이 쓴 『동인수혈침구도경(銅人腧穴鍼灸圖經)』 및 홀태필열(忽泰必烈)의 『금난순경취혈도해(金蘭循經取穴圖解)』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왕유일의 『동인수혈침구도경』은 1027년 침구동인(鍼灸銅人)으로 주조(鑄造)되어 교육과 시험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송(宋), 금(金), 원(宋)대에 걸쳐 경혈의 위치가 새롭게 정립되고, 운기설의 영향을 받은 침법이 나타나는 등 침자수기법(鍼刺手技法)이 정립된다. 이같이 정립된 침구법을 바탕으로 원대(元代) 1341년(至正初元), 허창활(許昌滑) 수(壽)에 의해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라는 경락서(經絡書)가 간행되어, 후세 침구의학의 지침서가 되었다.
  『십사경』은 십이경맥과 임맥, 독백의 합칭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인체를 세로로 질러 폐경(肺經), 대장경(大腸經), 위경(胃經), 비경(脾經), 심경(心經), 소장경(小腸經), 방광경(膀胱經), 신경(腎經), 심포경(心包經), 삼초경(三焦經), 담경(膽經), 간경(肝經) 등 12계통이 있는데, ·이 12계통 경락의 조절경으로서 정중선상 전후면에 임맥(任脈)과 독맥(督脈) 등 1경(經)씩을 합해 모두 14경이 된다.
  『십사경발휘』 범례((凡例)에 "십이경의 배열 순서와 유주하는 차례에 선후를 매기고, 입맥, 독맥의 기경을 덧붙여, 이를 십사경이라고 했다" 하였다. 또한 “기경팔맥 중 독맥과 임맥만이 자체의 경혈을 가지고 있어 십이경맥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므로 십이경맥 계통에 포함시켜 십사경이라 합칭한다" 말하기도 하였다.
  이들 경락을 통해 순환하는 에너지가 유체(留滯)되어 과부족을 일으키기 쉬운 자리를 경혈이라 이름하며, 이것은 전신에 600여 개가 있고 침구의 치료점이 된다고 한다.

  『성종실록』 3년(1472) 3월 14일 기사에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와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는 바, 예조(禮曹)에서 의사 제조(醫司提調)와 함께 의학(醫學)을 권장하는 조건(條件)을 마련(磨鍊)하여 아뢴 10조 중 7조에 다음 내용이 있다.
  “사맹삭(四孟朔)에 취재(取才)할 때에 여러가지 방서(方書)를 추출(抽出)하여 강(講)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범람(泛覽)하기만 하고 정밀하게 익히지는 못하니…겨울의 맹삭에는 『본초(本草)』, 『자생경(資生經)』,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에 나누어 배속시켜 취재(取才)하게 하소서.”
  실록에 실린 이 내용을 통해 볼 때,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는 조선전기 이래 국내에 수입되어 내의원 등에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寬政十戊午年(1798) 九月 再板본이 현존함을 보아 18세기 중반에 중국에서 수입된 책을 바탕으로 이 책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 경락유혈골도지도(經絡兪穴骨度之圖)

  경락서(經絡書)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 본문에는 14도(圖)의 도판이 실려 있다. 한편 그 책 권하(卷下)의 [기경팔맥편(奇經八脉篇)] 말에 앙인척촌지도(仰人尺寸之圖) 복인척촌지도(伏人尺寸之圖) 등 2면의 그림이 있다. [앙인척촌지도(仰人尺寸之圖)]와 [복인척촌지도(伏人尺寸之圖)] 등 2도(圖)가 실려, 총 16도(圖)가 소개된다. 그 가운데 [앙인척촌지도(仰人尺寸之圖)]와 [복인척촌지도(伏人尺寸之圖)]의 도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앙인척촌지도(仰人尺寸之圖)]    [복인척촌지도(伏人尺寸之圖)]

  3. 일본 촌상종우(村上宗右)의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 경락 유혈골도 지도(經絡 兪穴骨度 之圖)

  寬政十戊午年(1798) 九月 再板본인 일본 간행본에는 중국 간행본과 마찬가지로 [앙인척촌지도(仰人尺寸之圖)]와 [복인척촌지도(伏人尺寸之圖)] 2도(圖)를 포함해 총 16도의 도판이 실려 있다.
  그런데 1726년 병오(亨保11)에 일본의 촌상종우(村上宗右)는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에 실린 16도(圖) 중 부록에 있는 [앙인척촌지도]와 [복인척촌지도] 등 2도(圖)를 바탕으로, <십사경발휘 경락유혈골도지도>를 전도(前圖), 복도(復圖), 측도(側圖) 등 3도로 그렸던 바, 이 가운데 <측도(側圖>)와 <복도(伏圖)> 등 2점이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4. 조선(朝鮮)의 당대 복각본

  1726년 일본에서 제작된 촌상종우(村上宗右)의 위 도상은 한국에서 목판으로 복각되었던 바, 일본에 전하지 않는 <전도(前圖)>까지를 포함한 다음 3면의 국내 목판 제작 인출본이 전한다.
  이 인출본의 경우 <복도(伏圖)> 좌측 하단부에 “亨保十一(1726)丙午歲 東都 孟春 一○○村上宗右自畵 須原屋○○○門版”이라 일본의 본래 간기(刊記)를 쓰고 있는 바, 글자의 새김 등을 볼 때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의 전통 한지에 인출된 것으로, 종이의 발 형태로 미루어 볼 때 대략 1750년 경 판각 인출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은 전도(前圖), 후도(後圖) 측도(側圖) 등 3도(圖)의 국내 목판 인출본으로, 각 67×19cm 크기이다.

  5. 초산(樵山) 유최진(柳最鎭)의 번화(飜畵) 필사본

  위 복각본이 국내에 유통되는 가운데 일본인 촌상종우(村上宗右)의 도상 및 내용을 변경시켜 만든 국내 필사본이 전해지기도 한다.
  다음 전래본은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 경락유혈골도지도(經絡兪穴骨度之圖)> 전도(前圖), 후도(後圖) 측도(側圖)를 혈자리에 대한 설명과 곁들인 필사본 3매로, 70.× 27.3cm 크기이다. 복도(伏圖) 왼편 중단에 “亨保十一年(1726)丙午孟春 日本人 村上宗右畵 癸酉(1813) 初夏 朝鮮人 초산거인(樵山居人) 번화(飜畵)”라는 묵서가 있다.
  즉 1726년 일본인 촌상종우(村上宗右)가 그린 것을 1813년(癸酉) 초하(初夏) 조선인(朝鮮人) 초산거인(樵山居人)이 번화(飜畵)했다는 것으로, 두 도상을 비교해 보면 혈자리에 대한 설명 등에 대한 첨삭이 이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초산(樵山) 유최진(柳最鎭: 1791∼1869)은 6대에 걸쳐 의원 노릇을 한 중인 계급의 인물로, 추사(秋史)의 문인(門人)이었던 우봉 조희룡 등과 교류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유최진의 집에서 거행한 모임의 장면을 그린 「오로회첩」에 유숙(劉淑, 1827∼1873)이 1869년 그린 「벽오사소집도(碧梧社小集圖)」가 실려 있는데, 여기 실린 다섯 인물 중 주부(主簿) 석경(石經) 이기복, 동추(同樞) 겸선(兼善) 김익용, 첨추(僉樞) 우봉(又峯) 조희룡, 산인(散人) 초산(樵山) 유최진, 호군(護軍) 만취(晩翠) 이팔원 등이 소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상,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 경락유혈골도지도(經絡兪穴骨度之圖)>는 1726년 촌상종우(村上宗右)에 의해 제작된 1750년경의 복각본에 해당하는 것이나,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존재하지 않는 전도(前圖)를 포함한 완전한 자료로서 중요 의미를 갖는다.
  또한 18세기 중반 조선 침구학의 수준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리 : 정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