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원각사

나왕케촉과의 대담

-「선문화」에서 인용-

1992년 이른바 리우 지구 환경 보존대회를 위한 국제연합(UN)의 준비회의(Earth Summit Precom)가 2주간의 회기로 개막되던 날, 총회장 무대에는 체구가 크지 않은 동양인 하나가 나타났다. 개막 연주를 위하여 등단한 그는 티베트 출신의 젊은 피리 연주자로, 노란 비단 위에 고운 수를 놓은 아름다운 민속의상을 입고 나타나 정중하게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는 대나무 피리를 꺼내어 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들었으나 각국 대표들은 그 피리의 미묘한 가락이 허공을 맴돌아 그 회의장을 가득 채우고 그들의 가슴 속에 스며 들어올 때 묘한 진동을 느끼고, 점점 신령스러운 소리에 끌리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 수 없는 황홀경에 빠졌다고 한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 안은 너무도 숙연해졌고 연주가 끝나고도 잠시 고요했다고 한다. 연주자가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 할 때 그제야 자기를 다시 찾은 청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쏟아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나왕 케촉(Nawang Khechog)이다.

나왕은 동부 티베트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아주 어린시절부터 야크의 뒤를 쫓아다니며 땔감으로 그들의 변을 모아 말리고, 따가운 햇빛 아래 버터에 쩐 까만 얼굴로 나무 하나 없는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망명길에 올라서 3년을 걸려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가 오늘날 국제연합 회의의 영광스러운 개막 연주에 초대되였고, 더욱 2001년에는 그의 음반이 음악가로서는 최고의 영광인 그래미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니 인생사의 뒤쪽에 감추어진 인연의 법은 나의 알음알이로는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이 모두 보이지 않는 필연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하고 자문해 본다.

그는 두해 전인 2000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티베트 전통 대나무 피리를 연주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바가 있다. 또한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정식 초청을 받아 공식 문화행사인 "전통과 현대 예술제"의 일부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을 가졌고, MBC 수요예술무대, 지리산 산사음악회, 그리고 보성 대원사에서 열린 "세계평화 기원 종교음악 축제" 등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나왕을 만나 그가 살아온 삶의 자취와 그의 종교, 음악, 그리고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나왕 케촉의 인생 역정

나왕은 1954년 티베트 동부 캄(Kham) 주(州)의 유목민 가정에서 부친 양룩과 모친 삼텐왕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은 고원지대로 나무 하나 자라지 않고 겨우 잡풀들만 바닥에 붙어 자라서 야크의 먹이가 되는데, 그 초원 위로 바람만 세차게 불기 때문에 때때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때도 있단다. 위로 누님이 셋이 있었는데 그는 누님들과 함께 아주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며 지냈다.

그의 나이 세살 때 부친과 가까이 지낸 한 요가 수행자가 3년 뒤에는 큰 재난이 닥쳐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집안이 풍지박산이 될 것이니 티베트를 떠나라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왕의 가족은 야크의 등에 실려 또는 때때로 걸으며 수천 마일 먼 인도를 향하여 떠났다고 한다. 그들은 위험한 산세와 혹독한 기후를 견디며 참으로 힘겨운 3년간의 여행 끝에 인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여행 동안 세 누님 중 둘은 병들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요가 수행자의 예언대로 그들이 인도에 도착한 1959년에 중국은 티베트를 완전히 점령함으로써 티베트 국민을 음으로 양으로 핍박하고 달라이라마 성하까지 시해하려 함으로 성하께서도 그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인도에 도착한 곳은 아셈(Assam) 지방의 히말라야 산록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이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티베트인들이 많은 북인도의 히마찰 프라데쉬(Himachal Pradesh) 주(州)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도 난민의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다시 중인도의 메디아 프라데쉬(Madhya Pradesh) 주로 옮기었다.

이러는 동안 나왕의 부친은 원래 유목민으로서 야크를 기르는 것 외에는 전연 백지인 사람이 주로 도로공사에 나가 임금이랄 것도 없는 적은 돈을 받으며 돌을 옮기고, 바위를 깨고, 원목을 끌어 운반하는 등 힘든 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공사장에서는 사고로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기 일쑤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달라이라마 성하가 인도 정부에 요청하여 인도 정부에서는 티베트 난민들에게 한 가족당 농토 1 에이커(약 1,250평)와 집을 주고, 티베트 난민을 위한 학교도 세워주고, 불교사원도 건립해 준다는 조건으로 오리싸(Orissa) 주로 이주를 권유하여 나왕의 가족도 오리싸 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때가 나왕의 나이 13살 때이었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제공한 1 에이커의 농토는 당장 농사를 지울 수 있는 땅이 아니고 밀림의 일부로서 우거진 밀림을 개간하여 밭을 이루는 것이니 신대륙의 개척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밀림에는 맹수와 뱀, 그리고 해충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 땅의 개간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움이 따랐다. 더욱 밭을 이룬 다음에도 유목민 출신으로 농사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옥수수를 심어 농사를 짓는데 실패에 의한 좌절도 많았고 참으로 눈물겨운 사연이 많았다. 뒷날 나왕의 부친이 회고하며 10년쯤 지나서야 겨우 농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단다.

나왕은 오리싸 주로 이사한 그 해 출가를 하게 된다. 그는 지난날 달라이라마 성하로부터 재가 오계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13살의 나이로 큰 뜻을 품고 혼자서 히마찰 프라데쉬주로 와서 라튀(Ratoe) 린포체에 의해 삭발하고 사미계를 받았다. 그 뒤 그는 달라이라마 성하로부터 구족계를 받았고, 성하를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고 자기의 삶 자체를 달라이라마 성하에게 바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출가한지 11년이 되던 1977년, 그는 달라이라마 성하와 조국 티베트를 위하여 그가 가진 타고난 재능인 음악을 통하여 더 큰 일을 하고자 환속한다.

그가 사문(沙門)으로서 수행하던 중 4년간은 밀라레빠 성자가 그랬듯이 히말라야의 토굴 속에서 완전한 은둔자의 생활을 하였다. 환속한 후에는 티베트 전통 대나무피리를 불며 음악을 통해 고통받는 조국 티베트를 알리고 불교의 포교를 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타고난 젓대잡이로 그의 남다른 음악적 재능에다 은둔자로서 수행하며 깊은 명상 속에서 더욱 탁월한 음악성이 길러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조국 티베트를 위하여 피리부는 사나이로서 연주활동을 하고 다니던 중 1981년 티베트를 사랑하고 티베트를 돕기 위하여 헌신하고 다니던 오스트렐리아 출신 레슬리 크리스챤선(Leslie Christianson) 양을 남인도 고아(Goa)에서 만나게 된다. 쉽게 그와 의기 상통하여 레슬리와 나왕은 바로 결혼을 하였다. 그들은 오스트렐리아로 가서 정주하고 그곳에서 오스트렐리아 티베트 위원회(Australia Tibet Council: ATC)를 창립하여 레슬리가 초대 위원장의 임무를 맡아 티베트 망명정부를 후원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폈다.

나왕은 오스트렐리아 각지를 돌며 음악을 연주할 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티베트의 현실을 홍보하고 후원을 호소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인연이라 그들은 1989년 이혼을 했다. 공교롭게 그들은 각각 1997년에 재혼을 했는데 나왕은 그가 은둔자로서 수행할 때 스승의 속가 조카이고 그와는 정신적 우정을 지녀온 쩨링 유돈(Tsering Youdon)을 다시 반려자로 맞았다. 그들은 3년 뒤 미국으로 이민하여 현재 콜로라도 주 록기산맥 자락의 작은 마을 근처에 살면서 그의 예술적 영감을 키우며 평화로운 가정을 꾸미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음악과 예술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나왕 케촉의 음악과 예술 활동

나왕은 독학으로 이룬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스승이 누구인가" 물었더니 "스승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작곡법은 어떻게 공부했는가" 다시 물었더니 "작곡법을 공부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앉거나 서서 피리만 잡으면 자발적으로 입이 바람을 알맞게 불어 넣도록 숨이 골라지고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여 음악이 이루어져서 그 소리가 허공을 맴돌아 흘러간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연주한 녹음을 듣거나 녹화된 화면을 보면 스스로도 참으로 놀랍다는 것이다. 어디서 저런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수 있었는지 자기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밀라레빠 성자가 십만 개의 게송과 노래를 동시에 짓고 부른 것이나, 1820년대에 있은 링 케살이라는 이야기꾼이 글자 한자 쓸 줄 모르고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면서 매우 문학적인 이야기와 고매한 시를 술술 구술한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티베트에는 그런 문화가 있다고도 말한다. "언제 처음 피리를 불게 되었느냐"고 물은 즉 "열 살을 갓 넘었을 때 우연히 피리를 손에 쥐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피리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나왕의 음악에 대하여 미국 부르크린 대학 석좌교수였고 선(禪) 수행을 한 시인 알랜 긴스버그(Allen Ginsberg)는 "나왕의 재능은 참으로 희귀한 것이다. 그의 창의성은 옛날부터 티베트에만 유일하게 전해지는 전통으로 명상과 마음 수련의 결과 시·노래 그리고 음악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는 자발적 표현(spontaneous expression)에 의한 것이다"고 하였다.

나왕은 지금까지 오선지 위에 작곡하거나 악보를 보면서 연주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연주한 곡을 다시 연주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마음만 정하면 자연적으로 재현이 된다고 한다. 또한 그의 「Winds of Devotion」이란 치유음악을 연주할 때 협연한 미국의 토착 인디안 피리 주자인 R. Carlos Nakai와는 어떻게 협주를 했느냐는 질문에 Nakai도 나왕 만큼 깊은 영감을 지닌 음악가여서 그냥 물 흐르듯이 협주를 했다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는 재능의 발로라기 보다는 영혼의 교감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영혼의 소리를 내는 음악가들이다.

나왕의 음악은 그러니까 어떤 계보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한가지 경향의 음악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알랜 긴스버그 시인이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의 음악은 선적(禪的)이어서 부처님의 대기설법처럼 청중의 근기에 알맞게 자발적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청중들이 그 음악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어 어디서나 최고의 찬사를 받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티베트의 종교와 민속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이국적인 풍미를 느끼게도 한다. "당신의 음악은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어느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은 없고, 자기가 자기의 음악을 들어볼 때 어린 시절의 유목생활과 티베트인의 믿음과 삶, 그리고 히말라야의 산세와 바람, 그리고 그 산간을 휘감는 소리들, 그리고 티베트의 고유한 영적인 가락이 어우러져 있음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7개의 CD 앨범을 출반하였다. 그 중에는 1988년에 <Sounds of Peace>,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라마 14세에게 헌정한 <Rhythms of Peace>, 1991년에 <Quiet Mind>를 독집으로 출반하였고, 1995년에 일본의 뉴에이지 음악가 Kitaro와 협연한 <Karuna>, 1998년에 R. Carlos Nakai와 협연한 치유음악 <Winds of Devotion>과 피아니스트 Peter Kater와 협연한 <The Dance of Innocents>, 그리고 2000년에 Nakai, Eaton 그리고 Clipman과 협연한 <In A Distant Place>를 출반하였다.

이들 중 <In A Distant Place>는 2001년 New Age Album 분야의 43차 그래미(Grammy)상 후보에 올랐으나 5개의 후보 앨범 중 나왕과 함께 <Karuna>를 협연한 Kitaro의 <Thinking of You>가 상을 받았다. 비록 나왕이 Grammy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살아온 인생 역정과 음악에 대한 교육의 배경으로 볼 때 후보에 오른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나왕은 그 외에도 많은 세계적인 유수한 연주가나 그룹들과 협연하였고 달라이라마 성하의 행사에는 거의 어김없이 찬조 연주를 하여 왔다. 또한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종교행사에서도 연주를 하였다. 뉴욕에서 열리는 티베트 하우스 연례 연주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며 12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구성한 청소년 교육 지원운동인 'Peace Jam Program'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등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연주가로서 나왕은 Carnegie Hall, Universal Amphitheater, Radio City Music Hall, Boston symphony Hall 등 세계적으로 유수한 음악당에서 연주하였다. 그는 세계 곳곳의 민속행사에도 참석하여 그의 대나무 피리 외에도 티베트의 긴 나팔(Dungchen)을 불고, 그 나팔 소리와 같은 저음의 노래도 부르며 오스트렐리아 원주민의 피리인 디제리두(Didgeridoo), 아메리카 인디안의 피리, 아프리카의 북과 심벌, 그리고 남미의 오카리나 등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뿐만 아니라 이런 악기들의 장점을 살려 만능 혼(Universal Horn)이라는 새로운 악기를 창안하기도 하였다.

나왕은 연극이나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서 연극상 수상자인 Lawrence Sacharow가 연출한 <Road Home>이란 연극의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였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로 <티베트에서 7년>의 일부 음악을 담당하였고, 티베트측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부분적으로 직접 출연도 하였다. 그는 현재 티베트 불교의 은둔 수행자(Hermits)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내년쯤 완성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그 다음으로 다시 티베트인의 망명생활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나 더 제작할 것이라고 포부를 말하기도 하였다.

맺는말

나왕 케촉은 윤회와 환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불교국가인 티베트인으로서 11년 동안 깊은 수행을 하였기 때문에 "당신은 전생에 어떤 분의 환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질문을 해 보았다. 그 소리를 들은 나왕은 한참을 크게 웃고는 "그런 것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언제인가 은둔수행자로 토굴에 있을 때 자기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스승이 "너는 전생에 닝마파(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의 라마(큰 스님)인 듯 하다"고 한 일이 있는데 아마 농담이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음악적 재능은 후천적으로 공부하여 얻어진 것은 아닌 듯 싶다. 그가 쓴 「음악」이란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 목록 ] [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