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자(佛子) 일기

이경미·불교대 2기

 

  어릴 적, 잠자리에 들기 전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잘못을 반성하고 소원을 빌며 기도하던 일은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언니를 따라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나는 가족 이외에도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안도감에 늘 마음이 평화로웠다.

 

  성탄절 날, 노래를 부르고 연극도 하며 보낸 즐거운 나날들… 이 다음에 커서도 교회에 나가야지 하고 다짐하던 학창시절이 끝날 무렵, 친구 분 권유로 절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가 외우시던 불경 소리는 왠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난 그때도 '종교는 자유!'라 외치며 세례까지 받던 언니를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군을 얻은 듯 흐뭇해 했다.

 

  어느 날, 엄마는 가까운 절에서 부처님 사리(舍利)를 모셔와 전시한다며 구경가자고 하셨다. 별 생각 없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 바라본 사리는 보통의 돌멩이 같았으나 부처님 육신의 일부를 보았다는 사실은 점점 나를 상념의 바다로 빠지게 했다. 아니, 예수님이 덮으셨던 이불 끝 한 자락이라도 먼저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시공을 초월해 내 앞에 놓여져 있던 저 부처님의 한 조각!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무언의 시위…

 

  나의 화두는 시작되었다. 부처님과 나와의 인연은 어떤 것일까?

  허나, 마음은 영 내키지 않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절에 간 날. 커다란 불상 앞에 넙죽넙죽 절을 하는 아주머니들, 떠들썩한 경 읽는 소리… 산만한 절 분위기 위로 경건하게 느껴졌던 교회 사람들의 모습과 정경들이 아롱져 갔다. 난 엄마의 협박에 못이겨 108배를 하고 의미도 모른 채 '석가모니불'을 외웠다.

 

  그러던 언젠가, 주무시는 엄마 머리 위 책장에 꽂혀 있던 불교 경전이 눈에 띄어 보게 되었는데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구절 구절이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밤새 읽었던 기억… 어쩜 부처님께서는 몇 세기가 지난 지금의 우리들이 보아도 다름없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이리도 잘 표현하셨을까? 이 책 속에는 정말 한 줄의 거짓말도 없는 것 같아. 진리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부처님 말씀도 옳으시구나…

 

  나는 책을 읽으며 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한 번쯤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와의 종교 전쟁에서 차례로 항복, 신실한 불자가 된 우리 형제들은 이후 통도사나 해인사를 다니면서 3천배 절도 하고 법문도 들으며 부처님 말씀을 배워 나갔다. 내가 지은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는 절은 업장 소멸의 기회가 된다고 하니, 할 때는 힘들어도 하고 나면 얼마나 후련한 지 몰랐다. 주위의 분들은 젊은 처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절을 하고 벌써부터 마음을 닦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다며 격려하시고, 먹을 것도 챙겨 주셨다.

 

  그렇게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어언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까지도 바쁜 일상 생활을 핑계로 많은 공부를 하진 못하고 있지만, 불자로서의 바른 삶에 대해 항상 귀기울이고 있다.

 

  이 화창한 5월의 봄날에 부처님께선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시고 보여 주시려 이 세상에 나신 걸까? 깨달음의 눈으로 찾으신 이 세상 진리와 만물의 이치를 우리들에게 일러주시어, 결국 일체 중생이 다 영원한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 함이 그 목적 아니셨을까.

 

  나도 이제 불혹의 나이를 지나, 초파일이면 두 아들 손을 잡고 절에 와 행사를 지켜보게 한다. 불심을 키워주려 이런저런 얘기를 귀찮게 해대는 모습이 꼭 예전 엄마와 닮았다.

 

  아이들은 아기 부처님 목욕도 시키고 꽃도 헌화하고 제법 긴 법문 시간도 잘 참아 내며, 싫어하는 나물밥도 곧잘 먹는다.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아이들의 가슴 속에 사랑과 자비의 마음 가득 넘쳐났으면 하고 바래본다.

 

  가정의 달 5월! 부처님 오신 날! 모든 불자님들의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부처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빌어 봅니다.

 

  가족을 부처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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