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사 대웅전을 나서며

한수옥·불교대 2기

 

  나이롱 신자라는 말이 있다. 내가 그렇다. 신앙심이 아닌 순전히 종교학으로 불교를 알고 싶어 불교대학 강의를 들었고, 그래서 한 번도 예불을 드린 적이 없었다. 그러다 마음이 조금 바뀌어 4월 초파일날 예불을 드리게 되었다. 그것도 아들의 손을 잡고서…

 

  예불 진행은 생각보다 무질서한 것 같았다. 절하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가만히 서있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예불이 끝난 후 점심 공양을 했는데 설거지가 너무 많이 밀려 좀 도와드렸다. 그래서였을까 공짜로 같이 성지순례를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머리도 식힐 겸 흔쾌히 따라 나섰다. 춘천 청평사(淸平寺)로 가는 버스 속에서 보이는 산은 온통 초록이 짙어오고 있었고, 아카시아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휴게소에서 쉴 때 우리들 코에 전해져 온 아카시아 향기는 늦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배를 타고 소양호를 가로질러 청평사로 향했다. 소양호에서 바라본 사방의 경관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백여 명이 만들어 놓았을 법한 돌무덤의 무리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 돌무덤 맞은편에 조그만한 영지(靈池)가 있었는데 그 영지는 고려시대 관직을 버리고 이곳 청평산에 들어와 선(禪)을 즐겼던 진락공 이자현이 만든 인공 연못이다. 사다리꼴로 가지런히 석축을 쌓고, 바로 곁의 계곡물을 끌어들인 영지 안에는 큰 바위돌 세 개를 놓고 그 사이에 갈대를 심고 연못에 오봉산이 비치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도 오봉산에서 치는 목탁소리가 이 영지에까지 울려 이 영지 앞에서 예불을 드리기도 한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 외에도 '공주탑'이라 불리는 청평사 삼층탑이 있는데 여기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원나라 순제의 공주에게는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청년은 순제의 노여움을 사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죽어서도 공주를 잊지 못한 청년은 상사뱀이 되어 공주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탓에 공주는 점점 여위어 갔고 달리 해결 방법이 없었다. 공주는 중국의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렸으나 허사였다. 이때 고려에서 온 구법승의 말을 듣고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된 공주는 지금의 공주탑 근처에서 여장을 풀고, 상사뱀에게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올 동안 몸에서 내려와 달라고 부탁을 하자 상사뱀은 공주에게서 몸을 풀고 내려 왔다고 한다.  

 

  절에서는 마침 가사불사 법회 중이어서 공주는 목욕재계하고 가사를 꿰맨 다음 법당에 들어가 염불을 하고 있었다. 공주를 기다리던 상사뱀은 기다림에 지쳐 공주를 찾아 나섰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갑자기 물이 불어나 막 절문으로 들어서려던 뱀을 쓸어가 버렸다.

 

  법회를 마치고 돌아온 공주는 폭포에 죽어있는 뱀을 보고 그를 가련하게 여겨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묻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순제는 사람을 보내 법당을 세우게 했고 공주는 이곳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얼마간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이때부터 이 탑을 공주탑이라 부른다고 한다.

 

  청평사 경내 입구에는 윤회를 상징하는 회전문(보물 164호)이 사천왕문 격으로 서있고, 이 회전문에서 다시 일직선으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보이고 그 옆으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 읍지에 따르면 고려시대 청평사의 규모는 221칸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떠했을 것인가 짐작이 간다.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 얼굴은 우울해 보였다.  똑같이 만들어진 부처상이라도 그를 모시는 사람들에 따라 부처님 표정이 변한다는 스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처님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우리 가족사진 속의 아버지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었는데 그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을 떼어내 영정을 모시고 나니 그 모습이 한없이 슬퍼 보인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아름다운 팔등신 미인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점점 시들어, 가십거리로 전락해버리는 것처럼 관광지에 모셔진 부처님도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아니고 관상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가슴 아플 것 같았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펴 주는 신도들이 없음을 한탄하는 부처님.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면서 내 가슴속의 부처님도 저렇게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으로 섬기는 부처님이 아니고 머리로 이해하려 드는 나의 아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바라는 나의 부처님.

 

  청평사 대웅전의 그 버려진 듯한 부처님 모습에서, 비로소 내 가슴속에서 여전히 내 마음이 열리길 기다리는 나의 부처님을 본 듯하여 내 마음도 덥혀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염(念)을 하며 대웅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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