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수행자의 새로운 모색(4)

정각스님·원각사 주지


소도(蘇塗), 아란야(阿蘭若) 그 역사성 확립의 장(場)
절[寺]은 민중의 것이다. 절의 문(門)을 개방하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그럼에도 관광수입과 사찰 재정과의 함수관계 속에 수행자들은 공원 내지 문화유산의 관리인으로, 스스로가 동물원 호랑이가 되는 세태에 살고 있다. 돈을 받게 됨으로서, 그리고 돈을 냄으로서 사찰은 말초적 유희, 감정 배설의 관광문화 정착지, 그 카타르시스의 장(場)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경건성 대신 고기 냄새와 함께 입장표의 반 조각 쓰레기를 남기고 간다.

명동성당은 현시대의 길목에서 종교성의 중심지, 소도(蘇塗)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적어도 94년 이전, 종단개혁 이전에는) 조계사에 운동권 학생들이 잠시의 피난처를 마련할라 치면 곧 냉대를 받았으며, 승단(僧團)은 과거 사회적 양심의 고백성사(告白聖事)에 대한 묵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종교의 성지, 소도(蘇塗)는 세속법의 완충지대이다. 인간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신적(神的) 기운이 서려진 성스런 땅.
그럼에도 그곳은 승려들만이 아닌 민중들에 의해 전승된 무형적 자산의 보고(寶庫)이다.
소도(蘇塗)는 세속을 떠난 속리(俗離)의 은둔주의적 상황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적정처(寂靜處), 아란야(阿蘭若) 가운데 존재한다. 아란야의 수도승이 왜 소방울 소리 들리는 곳,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자리했는가? 이는 민중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장소요, 탁발을 통해 이집 저집을 기웃거려 민중의 생활을 탐색한 채, 이념적으로나마 그들과 빈부(貧富)를 같이하는 곳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역사성(歷史性) 확립의 장소인 것이다.

맺으며
이상의 언급 속에는 상황윤리(狀況倫理)적 측면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휴암스님은 <‘무엇 - 존재’, ‘어떻게 - 가치정신’>이란 도식으로서 ‘깨달음’이란 문제를 제기한 가운데, “존재를 건지기 위해 정신을 죽인다…(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하고, 그것으로 족하고 뒷소리는 아예 필요 없다. 윤리적 자기부정은 문제거리가 아니다”(휴암, 「깨달음의 문제」(『선우도량』 vol. 2), pp. 15～19)는 식의 발상을 경계하고 있다.
그 요지는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와 관련된, ‘목적을 위한 수단’을 ‘수단을 위한 목적’으로 혼동해 버리는 식의 사고 속에, ‘목적을 위한 수단’ 자체를 떠난 ‘순수 목적의 원리’를 강조하는 철저함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계초심학인문』에서 말하는 「지범개차(持犯開遮)」의 원리부정(原理否定)이라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변계소집(遍計所執)의 무명(無明)을 떠난, 의타기성(依他起性)을 전제로 한 헤겔(Hegel)의 매개(媒介, Vermittelung)적 측면이 아닌, 그렇다고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직접성(直接性, unmittelbarkeit)을 통한 만남의 개념과도 거리가 먼,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원리를 제시한다.
즉 자기구현을 말하는 것으로, 그럼에도 자기구현에는 그 이념이 요구된다. 이것은 앙굴리마라의 살인 역시 도(道)를 위한 윤리적 자기부정이라 치부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道)를 위한 윤리적 자기부정의 필연성 자체가 우리를 찾아오는 때, 그때에만이 우리는 차선(次善)의 방법으로서 선법(善法)의 증대를 위한, 악법(惡法)의 쇠퇴를 위한 지범개차(持犯開遮)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 모색이야말로 스스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수단이 되어질 것이다.
출신이나 가문이 아닌 행위에 의해 수행자가 된다. 불교는 신학(神學) 아닌 인간론(人間論), 아니 불성론(佛性論)을 말한다.
불교는 무교주(無敎主)의 교주(敎主)를 모시며, 삶의 상황 가운데 펼쳐진 무교리의 연기적 교리를 지닌다.
불교는 삶 속에서 전개되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한 자기 완성의 길이며, 그 길을 사회에 환원하는 가운데 현실사회와 불교가 만난다. 그리고 이 가운데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참 지평이 있다.
무공간(無空間)의 위상공간(位相空間)을 걷는 자, 코살라국의 침공에 그늘 없는 나무 아래 두 번이나 앉았던 붓다는 마침내 숙업(宿業)의 논리에 거역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방편이 대안(代案)인가? 대안은 없어 보인다, 아니 대안은 우리의 내면 속에 있다.
방편보다는 업(業)의 종식을 위해 노력할 뿐… 이것이 붓다의 근본정신을 바탕한 정신적 이념의 기본이며, 그 표현은 만행(萬行)을 떠나는 운수(雲水)의 발자국 가운데 발견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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