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실ㆍ체질 (2)

정명(淨明)·일산 「중산한의원」 원장


“나는 어떤 종류의 음식만 먹으면 속이 거북해진다.”
“나는 여름만 되면 맥을 못 춘다.”
“나는 감기에 걸리면 항상 목이 많이 붓는다.” 등등 누구나 잠깐 자신의 건강상태를 돌아보면 이런 식으로 몇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체질의학은 이러한 초보적인 자기 인식을 일반화시켜서 이론적인 체계를 이룬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내경』의「음양이십오인론」이나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 등 체질에 관한 이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질 생리?병리에서 시작하여 체질 임상까지 실제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일관된 이론체계를 세운 것은 <사상 체질의학>이 처음이자 지금까지는 유일합니다.
한의사 사회의 속설에 “체질을 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한의사들이 체질의학을 올바르게 홍보하지 못한 책임이겠습니다만, 이러한 좋은 이론이 오해되고 왜곡되어 환자와 한의사 간의 올바른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체질과 업(業)
윤회설에 따르면 전생에 지은 선악(善惡)의 업(業)이 종자가 되고, 이 종자가 부모 인연을 만나서 현세의 나[我]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업은 내가 태어난 원인이자 내가 현재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체질의학에서는 비록 전생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와 유사하게 각자의 체질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체질의학에서는 인간의 본래 감정인 희(喜)?노(怒)?애(哀)?락(樂)이 적당한 중용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성(性)이라 하고, 중용을 넘어 치우친 상태를 정(情)이라 하는데, 이 정(情)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불교의 업장(業障)과 같이 어떤 기운을 형성하게 됩니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슬픈 감정에 집착하면 태양(太陽)
성내는 감정에 집착하면 소양(少陽)
기쁜 감정에 집착하면 태음(太陰)
즐거운 감정에 집착하면 소음(少陰)

의 업이 쌓여서 마침내는 부모의 유전적인 인연과 결합하여 각자의 체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은 타고난 대로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생에서 업력(業力)으로 작용하여 또 다른 업을 다시 지으려 하듯이, 체질적인 성향 또한 그 타고난 치우친 상태를 자꾸 커지게 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어, 중생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병고(病苦)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체질이 근본적으로 내 마음의 집착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제마 선생은 『동의수세보원』의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성명론」·「사단론」·「광제설」 등을 배치하여 체질이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고, 병고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 마음을 올바르게 기르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제마 선생의 양생론
이제마 선생이 말하는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원래 요즘 흔히 말하는 “소양인은 돼지고기를 먹고, 소음인은 닭고기를 먹고” 하는 저차원적인 것이 아닙니다. 『동의수세보원』의 「태양인」 편을 보면 “내가 원래 태양인의 체질을 타고나서, 젊었을 때부터 해역과 반위의 병을 얻어서 7년 동안이나 구토증으로 제대로 먹지를 못하였다. 그 후 수십 년 몸을 조리하여 다행이 이렇게 60살 넘게 살았다. 만약 치료방법을 말한다면 한마디로 ‘슬픔과 분노’를 멀리하는 것 밖에 없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감기 같은 가벼운 병이 아닌 오래된 병이나 중병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 우리 주위에 불치의 병을 앓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결국은 스트레스 즉 마음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마 선생의 양생법의 핵심은 “마음을 바르게 가져서 본성을 함양하고, 몸을 건강하게 닦아서 천명을 온전하게 누린다(存其心 養其性, 修其身 立其命)”라고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사치와 나태와 집착과 탐욕을 멀리하고, 검약[簡約]하게 살고, 근면[勤幹]하게 살며, 집착하지 말고[警戒], 보고 듣는 것[聞見]에 힘쓴다면 누구나 천명을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체질이 변할까요？
환자를 상담하면 ‘체질이 살아가면서 변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체질이라는 말에는 ‘넓은 의미의 체질’과 ‘좁은 의미의 체질’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나는 술이 안 받는 체질이야” “나는 체질적으로 어디가 나쁘다”라고 말하는 체질이나 알러지 체질 산성 체질과 같은 병적인 성향은 이른바 ‘넓은 의미의 체질’로 환경과 노력에 의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이니 하는 사상체질과 교감 - 부교감 신경 긴장체질 같은 ‘좁은 의미의 체질’은 앞서 설명했듯이 태어날 때 이미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생을 두고 변하지 않습니다.
체질을 영어로 번역하면 ‘Costitution’이라 하는데,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 말에는 구조라는 또 다른 뜻풀이가 있습니다. 즉 체질은 인체의 구조적인 차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구조적으로 장부 경락의 허실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리 병리가 서로 다르고, 심지어 성격과 용모까지도 서로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체질만이 건강하게 할 수 있는가？
한방을 이용하는 많은 분들은 모든 한의사들이 체질 전문가이고, 체질을 알아야만 건강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의사 선생들이 체질의학 과목을 통해 전문가 수준의 교육을 받습니다만, 전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오장육부를 갖춘 보편적인 인간으로 보는가”, “오장육부의 허실이 서로 다른 개체적인 인간으로 보는가”의 사람을 보는 철학에 따라 임상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모든 한의사들이 체질의 전문가라고 오해하고 있기에, 전공하지 않는 한의사들은 환자가 체질을 물어보면,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체질의학만이 한의학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한의사가 체질의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무현 정권에 찬성하는 사람만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듯이,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이 남용하는 유식한 말로 체질의학은 한의학의 또 다른 패러다임일 뿐입니다. 전통한의학적인 방법으로도 암을 치료하고 당뇨병이나 다른 고질들을 치료하는 훌륭한 한의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이 글을 쓰는 보람이겠습니다.

중산한의원 ☏ (031) 97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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