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사지, 불교라는 이름의 역사 ”

최근 몇 년 사이에 폐사지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회에 폐사지 보존 법안이 상정중인가하면 ‘폐사지를 지키자’는 시민 운동과 함께 화려한 조명하에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개별 폐사지 탐방 기획물을 싣기에 앞서 폐사지에 대해 알아야할 일반적인 사항들을 개괄해본다

대부분 전쟁으로 폐사지화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

 이 말은 서구처럼 대형화된 전시관이 아닌 길거리에서 유무형의 문화재를 만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특징을 설명하는 말이다. 작은 암자 터에서 유명한 대찰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2천~3천개에 이르는 폐사지는 ‘전 국토의 박물관’이라는 특징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라 하겠다. 

폐사지는 말 그대로 지금은 폐허가 된 옛날 절터이다. 불교가 처음 전해졌던 삼국시대 이래 우리 땅에 번창하던 절들은 화재나 자연쇠퇴 뿐 아니라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몽고 침입, 임진왜란을 거치며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절들도 다시 육이오 때 불탄 곳이 많다.

불교는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를 형성하면서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신앙적 특성상 불상과 함께 당탑가람(堂塔伽藍 법당, 탑, 절을 말함)과 이에 따른 뛰어난 조형물들도 함께 조성되었다.

폐사지는 사찰이 조성돼서 융성했을 당시의 시대 정신과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사찰 구조의 변화된 상태, 그리고 사찰 생활문화의 흔적과 기록상에만 남아있던 사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 부여정림사지 발굴을 통해 백제시대 가람구조를 밝히는 계기를 마련한 예가 있는가 하면  최근 은평 뉴타운 개발지에서 기와 몇 조각으로 그동안 신라시대의 화엄사찰 청담사의 흔적을 발견한 예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폐사지는 우리 나라 문화 유적지로서, 불교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왔다. 폐사지에 관한  통계 자료는 조계종 총무원이 1997년부터 3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불교사원지>정도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폐허가 된 절터의 명확한 유래와 역사 규명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수많은    폐사지가 방치되어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것의 관리와 보존은 불교계의 대표적 현안 문제이기도 했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과 법당을 찾는 불자들의 발길은 사라졌지만, 석탑과 부도 등의 문화재는 절터를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없이 설하고 있다.

무관심 혹은 무분별한 개발 사이에서

1960년대 이후 사적 또는 시·도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는 폐사지는 100여곳이다. 국가나 지차체의 보호를 받고 있는 곳도 그 관리 정도는 폐사지마다 천차만별이다. 경남지역 최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던 산청 단속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동서쪽 두 기의 석탑(보물 제72·73호) 과 3m가 훌쩍 넘는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하지만 석탑과 더불어 사찰의 중심을 이뤘을 금당 자리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보물 463호 진공대사탑비의 귀부와 이수, 그리고 보물 464호인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원주 흥법사지(문화재자료45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초석이 여기 저기 뒹굴고, 절터 한편에는 고추밭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폐사지도 이 같은 상황이니, 대다수 지정되지 않은 폐사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지방자치단체들에 따라 폐사지는 관광자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원주시가 경복궁 뜰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 101호) 반환을 주장하며 이 탑을 중심으로 법천사지와 거돈사지(사적 제168호)를 묶어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서산시 또한 보원사지(사적 제316호)를 2006년부터 12년에 걸쳐 발굴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유물 전시관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경주 황룡사지 또한 찬반대의 많은 논란에도 불구, 복원 방침을 결정했고 복원을 위한 일부의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의 폐사지에 대한 관심은 폐사지를 단순히 “관광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폐사지를 성역시하려는 불교계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서산 보원사지는 지자체 독단으로 사지정비 계획을 추진해 조계종과 마찰을 빚은 바 있고 , 청주 흥덕사에서는 스님 한 분 주석하지 않는 상태로 사찰이 복원되어 논란이 됐다.

조계종에서는 폐사지 관리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폐사지 안팎에 애정이 있는 스님이 주석한 절을 세워 폐사지를 관리, 보존하게 하는 방법을 들고 있다.

 사찰문화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폐사지란 인연이 다해 사찰의 기능이 멎었을 뿐 여전히 사찰 못지않은 불교 유적”이라고 지적하며 “폐허가 된 절터에서 불법과 구도정신을 배울 수 있는 만큼 성지순례 코스로 포함시켜 폐사지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폐사지, 왜 보존돼야 하는가?

“산야에 묻혀있는 옛 절터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 문화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임과 동시에 고대 불교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옛절터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이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무한의 보고이다…”

김남용 <국보와 보물이 있는 옛 절터 이야기>중(일진사)

“폐사지야말로 한국불교의 침향이요, 불교라는 이름으로 응축된 이 땅 역사의 침향이다. 폐사지 찾기는 침향 찾기요, 침향 찾기는 중심이 흐린 세상을 건너는 새로운 뗏목찾기이다.”

 장지현 <잊혀진 가람탐험> 중 (여시아문)

“폐사지는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즐거움의 원천은 상상력이다.…  그래서 폐사지는 ‘텅빈 충만’의 역설을 만끽하게 해준다.”

이지누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중 향적 스님의 머리글(호미).

폐사지 보존 법안

체계적인 폐사지 보존·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2005년 10월 조계종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측에 의해 국회에 상정된 법안. 폐사지 관리에 따른 법적 근거 마련이 주된 골자이고 폐사지 복원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결정과 지원 내용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인수위원회)에 들어서도 폐사지 관리 및 보존 문제가 제기됐으나 고증과 문화재위원들간에 이견을 이유로 정부에서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황룡사나 미륵사지의 복원 문제는 당분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