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혁명 “선종(禪宗)의 텃밭”

-진전사지(陳田寺地)

동해의 북단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북쪽으로 8km 올라가다 속초비행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진전사지. 보이는 것이라곤 석탑과 부도 두 가지 뿐이지만 진전사지는 우리나라 선종의 출발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진전사가 정확하게 언제 세워졌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그러나 진전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도의(道義)선사가 서라벌을 떠나 진전사의 장로가 되었던 때를 그 시점으로 잡는다면 821년 즈음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진전사의 삼층석탑은 양식상으로 보아도 9세기 초 하대 신라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진전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도의선사이다.

도의 선사는 그가 한국 불교사에 차지한 역사적 비중에 비해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일대기가 따로 전해지는 자료는 없지만 조당집(祖堂集)과 문경 봉암사에 있는 지증대사비문, 장흥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비문을 종합하면 어느 정도 그의 삶이 복원된다.

도의선사의 생몰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선덕왕 5년(784년) 당나라 오대산으로 떠난 후 35년 중국에서 머물고 돌아와 진전사에서 40여 년간 수도한 사실로 미루어 서기 760년에서 77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왕권 불교의 이단아 도의선사

9세기 초 당시 통일신라 사회는 왕실을 중심으로 ‘화엄’이라는 귀족 중심의 불교로 똘똘 뭉쳐있었을 때였다. 화엄종의 승려와 사찰은 종교적 역할 외에 왕에게 자문하거나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였을 뿐 아니라 외교적 역할이나 교육까지 담당하여 사회의 전 영역에 침투하였고 이들은 왕권의 수호자가 되어 세속적 권력과 공생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당시 통일신라 하대의 실정과 민중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새로운 불교의 출현을 고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의 선사가 주창하는  ‘선종’이라는 불교의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이게 하여 한국 불교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것이다.

통일신라 시기인 서기 821년. 도의선사는 35년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익힌 불법은 선종 중에서도 남종 선의 골수였다. 그는 신라 불교의 혁신을 외친다.

“문자에 입각하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르쳐, 본연의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된다.”고.

  젊은 유학승의 이러한 말은 교종 불교가 절대적이었던 당시 신라 기성세력들에게는 매우 못마땅한 것이었다.

인간의 평등과 참된 본성을 중시하는 그의 진보적 견해는 위계질서에 입각한 신라 왕권 불교에 대한 엄청난 반역이었다.

그의 말은 곧 “마귀의 말(魔語)라고 배척을 받았고 도의선사는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걸음을 돌려 이곳 설악산 자락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보조선사비에 따르면 도의선사는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함을 알고 산림에 은둔했던’ 것이다.

도의선사의 사상은 그의 제자 염거화상(廉居和尙)에게 전해졌고, 염거화상의 가르침은 다시  보조선사에게 전해졌다.

보조선사는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세우고 법을 전파하였다. 이 법이 곧 9세기 말 아홉 개의 유명한 절을 중심으로 열린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제일문인 가지산파의 세력이다.

도의선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은 중앙의 귀족이 아니라 지방의 호족이었다. 중앙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던 지방 호족들에게 도의의 사상은 구원이었다.

호족도 지배층에 이어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되어 그들은 다투어 지방에 선종 사찰을 세우게 된다.

이런 역사는 지방 호족 중의 한 사람인 왕건의 승리로 귀착되었고 그 맥락은 오늘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까지 이르러 ‘선종 중심’이라는 확실한 한국불교의 전통을 마련한 것이다.

그 모든 변혁의 출발이 진전사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 

진전사지의 폐사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또한 전해지는 말로는 고려 말 불교가 타락일로에 빠지고 조정 관료의 부정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산간 지역 등 조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도둑떼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설악산을 중심으로 도둑떼들이 진전사와 신흥사를 여러 차례 약탈하자 견디지 못한 스님들이 절을 떠남으로써 폐사가 되었다고도 한다.

 절이 폐사될 때 진전사 터 위에 있는 연못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했다고 한다.

부도의 탄생

진전사지가 자리한 산등성이를 따라 위쪽으로 500미터쯤 올라가면 진전사지 부도(보물 제439호) 가 자리 잡고 있다.

도의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지 부도는 우리나 석조 부도의 출발점이 된다.  신라시대의 유명한 고승 즉, 원효, 의상, 진표, 자장 등 어느 스님도 부도가 남아있지 않다.

화엄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이전까지 고승의 죽음은 그저 죽음일 따름이었으나 도의 선사 이후 대선사의 죽음은 다르게 생각되었다.

즉 “본연의 마음이 곧 부처”이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곧 부처와 동격이 되는 까닭이다. 이제 성불했다고 믿어지는 대선사의 죽음은 석가모니 죽음 못지않은 것이며 그의 사리도 그만한 예우로 봉안해야 하는 것이다.

도의선사 부도가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반으로 보고 있다. 3.17 미터 높이의 이 부도는 초창기 형태라 그런지 그 이후 세워진 일반적인 부도와 형태면에서 많이 다르다. 즉, 전형적인 부도의 형태인 팔각 원당형이 아니라 석탑의 형식을 갖고 있다.

기단부는 진전사지 삼층 석탑과 같이 이중기단(二重基壇)형태를 갖고 있다. 석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단의 구조는 다른 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진전사의 삼층 석탑(국보 2제 122호)은 진전사의 너른 들판에 오뚝하니 서있다.  신라하대 선종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9세기 석탑으로 석가탑의 전통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8.2 미터인 석가탑에 비해 5미터 높이로 아담한 느낌을 준다.

기단에는 팔부중상(八部중상불교를 수호하는 8종류의 신)이 새겨있고  일층 탑신에는 여래 좌상이 각 면에 한구씩 조각되어 있다.

진전사지 부도  우리 나라 부도의 효시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경전 위주의 교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불교유적이기 때문이다.

진전사지 삼층석탑 하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으로 석가탑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