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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華嚴經 약찬게略纂偈와 해인삼매海印三昧’

스님께서는 1987년 송광사에서 출가하여 중앙승가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20여종의 책과 50여 편의 논문을 저술하셨으며, 현재는 중앙승가대 명예교수와 일산 원각사 주지로 주석하고 계십니다. 우담바라합창단의 아름다운 선율로 찬불가 “게송” 음성 공양이 이어진 후, 스님은 ‘화엄경 약찬게와 해인삼매’라는 주제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법회에서 말씀드릴 내용 <화엄경華嚴經 약찬게略纂偈>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과연 언제 만들어졌으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기존 논문들에서는 이 ‘<화엄경 약찬게>가 조선 중·후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견해를 제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작년에 쓴 논문에서 밝혔듯, ‘<화엄경 약찬게>는 고려시대에 이미 만들어졌고, 그 저자가 ‘이자용’이라는 인물이 아니겠느냐‘는 내용을 다룬 바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화엄경 약찬게>는 한국 불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봉은사에서는 매번 법회 때마다 <화엄경 약찬게>를 독송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과 의미는 과연 무엇일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우선 <화엄경 약찬게>를 생각하기 이전에 화엄신중 <신중경神衆經>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화면을 보시면서 신라 문무왕 때의 기록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스님은 준비하신 PPT 자료를 함께 보며 설명을 이어가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외우고 있는 <화엄경 약찬게>는 이미 1349년 이전에 완성되어 목판본에도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약찬게가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한밤중에 궁궐을 지키는 수위 담당 사졸들에게 명을 내려 대궐 뜰에서 <신중경>의 소재주消災呪를 외우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재주를 외우게 했다는 것은 <신중경>의 말미에 실려 있는 <불설소재길상다라니>를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암송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 초기에도 지금 우리가 외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중경神衆經>,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용수보살 약찬게龍樹菩薩略纂揭>, 그리고 <불설소재길상다라니佛說消災吉祥陀羅尼>가 그대로 독송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0조 9만 5천 48자의 방대한 내용을 770장 79회로 간략히 정리한 것이 바로 <화엄경 약찬게>입니다. 순천 송광사 화엄전에는 1770년에 제작된 <화엄경 변상도華嚴經變相圖>가 있습니다. 이 변상도는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의 <화엄경>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특히 18세기 후반 조계산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연화蓮華를 비롯한 13명의 승려 화가들이 참여해 이 내용을 불화佛?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불화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는 연화장 세계를 묘사하고, 그 위에는 지상 세계, 다시 그 위에는 천상 세계가 차례로 그려져 있습니다. 연화장 세계의 묘사를 중심으로, <80화엄경>에서 나오는 ‘7처 9회의 설법’ 중 지장설법회 첫 번째 ‘보리도량회’의 장면이 하단부에 묘사되어 있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두 번째 보광명전회, 세 번째 도리천궁회의 모습, 네 번째 야마천궁회의 모습, 다섯 번째 도설천궁회, 여섯 번째 타와자재천공회, 일곱 번째 보광명전회, 여덟 번째 보광명전회, 아홉 번째 서다림회 등 각각의 내용을 차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는 53명의 선지식 각각의 인물들이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총 533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를 통해 화엄경의 각 품이 가진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에는 세주묘엄世主妙嚴, 여래상如來相, 보현삼매普賢三昧, 세계성世界成, 화장세계華藏世界, 노사나盧舍那, 여래명호如來名號, 사성제四聖諦, 광명각품光明覺品, 문명품問明品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암송하는 이 내용들은 바로 <화엄경> 39품의 제목들로, 이를 통해 우리가 외우고 있는 것이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습니다.<화엄경 약찬게>의 마지막 구절인 ‘시위십만게송경是爲十萬偈頌經, 삼십구품원만교三十九品圓滿敎, 풍송차경신수지諷誦此經信受持’라는 내용을 우리가 외우고 있습니다. 이는 80권, 39품, 10만 게송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화엄경>을 한자 770자, 110구절의 게송으로 간결하게 줄여 원만한 가르침을 담은 것이며, 우리가 외우고 있는 <화엄경 약찬게>의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 수행의 원리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信·해解·행行·증證의 신信은 진리에 대한 믿음, 또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믿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믿음의 원리에 대한 이해解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즉, 불교를 믿고 있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신중기도에서 <화엄경 약찬게>를 외우면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런 법문을 통해 그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信이 있고, 믿음의 원리에 대한 이해解가 뒷받침된다면, 그다음으로는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行으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진리證를 증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오늘 법회를 통해 <화엄경 약찬게>가 담고 있는 가르침, 곧 해인삼매의 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께서 법을 설할 수 있게 한 근본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고 고요한 삼매에 들어, 내면에서 참된 진리가 샘솟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대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신·해·행·증의 과정을 통해 해인삼매를 얻을 수 있는 토대를 하나씩 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백고좌 대법회 56회차 법문은 여법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글 기획국

사진 홍보미디어연등최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