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해남 대둔사(지금의 대흥사)에서 발간된 ‘동해(東海) 표기 지도’가 실린 책이 공개됐다. 고양 원각사 주지 정각스님(동국대 겸임교수)이 최근 입수한 <김해김씨추원록(金海金氏追遠錄)>이 바로 그것이다. 동해라는 명칭이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특히 사찰에서 발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 ‘억지 주장’ 반박할 ‘귀한 자료’

‘김해김씨 추원록’에 수록된 ‘고지도’

  18세기 말 조민·복신스님 등 판각

  고양 원각사 정각스님 자료 공개

<사진> <김해김씨추원록>에 실린 ‘삼국분강총도’. 오른쪽 중간에 동해(점선 동그라미)라는 표기가 선명하다.

이번에 공개된 <김해김씨추원록>은 1776년 해남 대흥사에서 발간된 것으로 예손(裔孫, 후손) 김명설(金命卨)이 저자로 되어 있다. 2권 1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삼국분강총도(三國分疆總圖), 영남육가야총도(嶺南六伽耶總圖), 시조가락국왕릉도(始祖駕洛國王陵圖) 등 3장의 지도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동해 표기가 등장하는 것은 삼국분강총도이다. 이와 함께 김해 김씨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락시조 왕본기(王本紀)’ ‘가락국 고적(古迹)’ ‘가락국 성씨(姓氏)’ 등이 수록돼 있다.

<김해김씨추원록>이 눈길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동해 표기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과 사찰에서 발행됐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동해 표기가 등장한 지도는 <신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八道總圖, 1531년 간행)’와 <영남지도(嶺南地圖,1790년대 말 간행)>가 대표적이었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역사적으로 꾸준하게 동해를 표기한 지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지도로써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일본이 국제사회에 동해를 ‘일본해(日本海)’로 표기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국분강총도’에는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의 요동, 그리고 대마도를 한반도에 포함시키고 있어 조선후기 조선인들의 영토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이 지도에는 백두산.삼각산.월출산.계룡산.지리산.송악.가야산 등 명산을 비롯해 영산강.백마강.황산강(지금의 낙동강)과 철령(鐵嶺) 등 이 표기돼 있어 지리적.역사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각스님은 “이 자료는 간행 연대가 확실한 동해 표기 지도이며, 사찰에서 발간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각스님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울릉도 동쪽에 ‘동해’를, 서쪽에 ‘서해’를 표기하고 있다”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동해라는 명칭으로 조선이 (동해를) 지배해 왔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이 책의 발간 시기와 장소는 <김해김씨추원록>에 실린 간기(刊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丙申仲秋日開刊于海南大屯寺(병 신중추일개간우해남대둔사)’란 내용의 간기(刊記)를 통해 1776년 음력 8월15일 해남 대둔사에서 발간했음을 증명한다.

또한 간기 앞에 적혀 있는 ‘각공(刻工, 나무나 돌 따위에 조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 명단을 통해 발간 당시 판각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각공은 모두 4명이다. 재가자로 보이는 조중록(曹重祿)과 조민(祖敏).복신(福信).□훈(□訓) 스님이다. 발간 장소를 통해 대둔사에 주석했던 스님으로 추정되며, 조중록이란 인물도 대둔사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김해김씨추원록>이 해남 대둔사에서 발간된 사실을 보여주는 간기. 오른쪽 아래 사진은 <김해김씨추원록> 표지.

한편 1744년 9월 건립된 두륜산 대둔사 사적비(事蹟碑) 각공질(刻工秩)에는 시헌(是軒).영문(文).영해(海) 스님 등 7명과 정대영(丁大榮).정수대(鄭守大) 등 3명의 재가자 등 모두 10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18세기 무렵 대둔사에 여러 명의 ‘각공’들이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대흥사 주지 범각스님은 “이 같은 자료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지만, 옛날 선대 스님들이 손수 판각 한 책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라면서 “숭유억불의 사회적 분위기가 있던 어려운 시절에도 열심히 정진했던 스님들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자료”라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어 범각스님은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국제사회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대흥사에서 발간된 이번 책이 동해 표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동국대 역사교육과 한철호 교수도 “동해 표기가 있는 지도가 공개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꾸준하게 동해라고 써왔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실학자뿐만 아니라 스님들도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했음은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 2492호/ 1월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