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언어를 통한 진리에의 다가섬. 언어의 상징체계를 통해 우리는 진리의 곳간에 이르를 수 있는 한에 있어 진리를 명료히 설명하고 있는 언어 유형은 마치 보물지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물지도의 안내를 뒤따르는 한 우리는 막막한 대지에 길 잃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각 종교의 성전에는 진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하나의 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진리 자체(Esse)에로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는 진리의 각 단편들은 성서로 남아 있기도 하고 불교 경전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현자들의 저서를 통해 남아 있기도 하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지적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것만이 절대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굳이 성서거나 불교 경전이라는 식의 구분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성서와 진리의 상징성
  이어서 스님은 성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당부하셨다.

  "언어 자체의 상징성을 보아야 해요. 성서 자체의 수많은 상징성과 메시지를 염두해 보고, 당시의 시기적 상황 같은 것도 전혀 무시해서는 안되지요. 전승(傳承) 가운데서 성서의 의미를 이해할 때에 성서의 참된 뜻을 폭넓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자체에 집착하면 자칫 광신(狂信)을 낳을 수도 있어요.

  선종완 신부님, 최민순 신부님 같은 분들에 의해 구약(舊約)의 앞부분이 참으로 번역이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감명을 받기도 하였을 것이에요. 하지만 전 신약(新約)에서는 그러한 감흥, 상징들이 많은 부분에서 잘 살아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성서는 진리의 상징성을 제시하는 그 어떤 모델로서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구별의 세계가 상정되어 있음을 느끼니까요. 즉 구약의 에덴동산에서 우리 인간을 쫓아 보냈던 야훼의 의지, 그리고 그 야훼와 거의 비슷한 권능과 지혜를 소유할 가능성을 가진 바벨탑의 인간들을 차별화 하고자 했던 그 의지는 과연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신약에 와서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거두어 모으려는‥‥ 어떤 면에서는 신·구약의 차이점이겠지만 뭔가 상반된 듯한 점이 보여지고 있잖아요. 심각한, 그러한 속에서조차 이러한 문제점들이 상반된 논리로 드러나지 않게끔 성서를 풀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스님께선 진리 탐구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종교의 참된 의미
  그렇다면 지혜를 향한 이성의 정진만 있고 실천과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진정한 감응이 없는 바의 것을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재차 의문스러웠다. 스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셨나 보다. 참다운 종교인은 어떠해야 할 지 따끔히 밝히셨다.

  "자꾸만 철학자의 말을 드는데, 앙드레 모로와, 삶의 철학(Lebensphilosophy)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잇고 있는 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창세기 말씀을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로 고쳐 말했습니다. 행동, 그것이 필요성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행동이라는 것은 진리에 대한 깊숙한 참다운 통찰 가운데 자연스러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참다운 인식은 사람을 행동에로 이끌게 되는 것 같아요.

  니이체(F. Nietsche)의 생애를 기술한 전기작가는 19살의 니이체가 갑작스럽게 자기 마을 앞을 지나고 있는 우마차, 마차를 끌고 가는 소를 바라보며 갑작스럽게 연민의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길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 길의 의미를 알 수 없듯, 타 존재에 대한 연민의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삶의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피상적 관념을 떠나 나 외의 타 존재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볼 수 있었던 그 사람, 그 사람만이 삶을 흘려보내지 않고 참다운 순간에 행동할 수 있는 것이지요.

  종교의 참된 의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우리를 무수히 떠나게끔 요구하는 것, 거기에 참된 그 무엇이 담겨져 있을 때 의미가 있답니다. 즉 현실생활에 대한 만족이란 종교적 의미와는 상반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진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스님은 그 어떤 협조자, 동반자 없이 세상에 오로지 홀로 길을 찾는 외로운 사냥꾼이기를 계속하여 고집하실 거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우리를 둘러 싼 모든 것들
  "삶의 상황 가운데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순간들은 모두 특별한 자기만의 그 어떤 계기가 되어서 우리를 찾아오지요. 그 순간들 속에서 그저 길을 갈 뿐. 그럼에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 속에서의 무수한 상황들, 나에게 제시되고 있는 모든 것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를 둘러 싼 그 모든 것들은 내 자신의 무수한 변혁을 요구하고 있어 보인답니다.
  시간과 공간 가운데서 인간은 무수히 자신을 변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많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내 스스로가 잘 살고 있는가 회의적일 때도 있지요. 그러한 모습이 간간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같은 순례자
  스님께 가슴 따뜻해지는 희망을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부조리(不條理)가 깨질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모든 것에서는 희망적인 것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대답하심으로 나에게도 희망을 선사해 주셨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스님도, 우리 모두도 결국 길을 걷는 순례자라는 동질성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처럼, 스님께서도 신에 대한 지적(知的) 사랑을 품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