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만이 숲 속 오솔길을 알고 있다

                                                                    동학 편집실

  "수도승이 어느 술집에 들어간다면 그 술집은 그의 수도장이 될 것이며, 주정뱅이가 어느 수도장에 들어간다면 그 수도장은 곧 그의 술집이 될 것이다."

  수피즘 시인 후즈위리의 말이다.

  스님을 만나 뵙겠다고 생각한 것은 「동학」에 주신 원고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사양하시지만 이 시대에 우리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고뇌하는 수행자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호흡과 색깔이 젊은 우리들과 같다는 이유를 스님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수행자에게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다고 한다면 스님의 색은 회색일 것이다. 스님에게서 느껴지는 킬리만자로와도 같은 느낌, 또 고뇌하는 거리의 수행자 같이 고요한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느낌이 회색의 빛을 상상하게 만든다. 회색 빛의 수행자, 우리의 승복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모습과 느낌을 가진 정각스님.

  도심의 포교당이지만 정갈한 법당, 또 스님의 말씀과 행동이 너무도 적막하리 만큼 고요해 도무지 그 정적을 깰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선뜻 말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생각에 잠시 망설였다.

  짧지 않은 침묵의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기자는 출가 동기에 대해 뜬금없이 질문을 던져 보았다.

  "출가 전에는 불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그저 관념적으로 도(道)라는 개념을 어려서부터 생각하곤 하였는데, 그래서 원래 스님이란 것보다는 도사(道士)란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면으로는 「자유」란 단어와 그 의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지요‥‥

  아마 대학 3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책을 한 권 썼던 적이 있는데 그 책의 주된 테마가 「자유」란 것이었지요. 내 자신 속의 자유, 피상적 관념을 넘어선 그 무엇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가 당시의 주된 관심사였었어요.

  그러던 중 헤르만 헤세의 책 『유리알 유희』 가운데서 주인공 크네히트가 '카스탈리엔'이라 불리는 상징적 신비의 장소를 찾아 나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는데, 나 역시 그와 같은 내면적 미지의 장소에 다다르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머물러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때 '카스탈리엔'이라 불리는 미지의 신비적 장소를 '절'이란 공간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절을 찾게 되었지요.

  3살 때 가톨릭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절이라고는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본 것이 전부였지만, 스스로가 쉬 절이란 장소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당시 친분이 있던 몇몇 사람들을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어요. 대학 졸업 즈음 안재찬(류시화)이란 친구가 당시 간행되던 『선사상』이란 잡지의 기획에 동참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했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정신세계·내면세계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와 나의 '카스탈리엔'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생각이 상승작용을 하였던 것 같아요."

  이상의 말과 함께 스님은 또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스님이 찾고자 원하며 가고자 하는 수행의 길이 출가 동기 속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과 생각은 우리 수행자들이 끊임없이 항해한 채 도달해야 할 목적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또한 어려서부터 나는 나름대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란 문제였는데, 그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이며 나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그 죽음 다음에는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현재적 삶과 죽음이란 세계와의 관련 속에 그 공간의 깊이를 스스로 알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만큼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이지요‥‥

  원래 신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고등학교·대학교 등 젊은 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그곳 신학교에서 멀어지게 되었던 것은 '사도신경'과 관련된 문제였어요. '사도신경'이란 가톨릭의 중요한 신앙 조목들을 적어 둔 것으로, 그 구절들 가운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는 영생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인간 죽음과 관련된 기독교적 도그마(dogma) 및 몇몇 테마들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이 와 닿지 않았던 것이지요. 아마 그때 나는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동양 사상적인 그 무엇에 좀더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분이셨고, 어려서부터 아버님 서재에서 수많은 종류의 책을 섭렵하였던 나는 은연중 동양적 사고에 물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 유년기 동안에 아버님 서재에서 한글대장경 중 일부를 접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내 자신 삶에 예사롭지 않게 작용했던 것 같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자연스러이 승(僧)의 길로 나아가게끔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다시 짧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요즘 내 자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면의 자유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는가? 또한 언제나 궁극적 목표의 노정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중[僧]이란 외형적 모습을 한 채 지금 이 자리에 위치한 나는 제대로 된 나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말입니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던졌던 '나는 왜 승이 되었는가?'라는 말의 의미를 내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합니다.

  무엇 때문에 승복을 입고 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 승(僧)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러한 물음들에 대한 나의 성실한 답변을 하나하나 끝없이 펼쳐 보이고 있느냐? 하는 것들은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화두(話頭)가 되고 있답니다. 그리하여 진정 스스로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나는 스스로 자유로움을 얻어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지요. 또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마련해 가는 현재적 삶 속에 오늘을 사는 승(僧)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갖게 되지요‥‥"

  잠시의 침묵과 함께 스님께서 물으셨다.

  "지금 내 모습 어때요? 괜찮아 보이는가요?"

  그때 스님의 모습은 스님께서 인용하신 "오직 사냥꾼만이 숲 속에 나 있는 오솔길을 알고 있다"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시인 횔더린(Hölderlin)의 시 구절처럼, 그 길을 가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어 보이는 허공의 물음과도 같이 나의 가슴을 울렸다. 스님께서 던진 그 질문은 우리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이자 우리들 삶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해 보라는 물음으로 메아리친 채, 우리 고뇌에 찬 수행자로서 끝없이 내던져지게 될 공명(共鳴)과도 같이 나의 귀를 울렸다.

  스님 지금의 모습은 회색 빛의 수행자. 일산이란 거대한 회색도시와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잿빛 수행자의 모습으로서, 스님이 찾아 나서는 미지의 장소 '카스탈리엔'을 불교를 알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절이란 공간 안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도록 오늘·내일도 끊임없이 노력하시리라 믿는다.

 「東鶴」, 2000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