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게놈 지도 완성, 불교는 무엇을 해야하나 
 
  유전자 분석 넘어 ‘심성 파악’ 필요 
 
  인간게놈(genome) 지도의 완성은 불교계에 긍·부정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업(業)과 연기설(緣起說)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는 불교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인간게놈지도 완성으로 대표되는 생명공학의 ‘빠른 변화’는 불교학자뿐 아니라 불교 교리 자체에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게놈지도를 불교영역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생명공학으로 파생되는 문제에 대해선 어떤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는지 살펴 보았다. 

〈편집자〉 

  인간게놈 지도의 완성은 이분법적 사고에 근간한 서구사상의 인식지평을 넓혔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동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며 사람중심의 사고를 했던 서구인들이 생각을 틀을 변화시켜야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김성철 교수는 “인간게놈 지도 문제는 인식론적 측면과 가치론적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고 “모든 중생의 평등을 강조하는 불교 교리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해석했다. 김교수는 “비록 현대 서구사상이 신본주의(神本主義)에 대립해 나타난 인본주의(人本主義)를 표방하고 있지만,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서구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이번에 완성된 인간게놈지도는 불교에서 볼 때 ‘초보적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보광스님(동국대 교수)은 “유식(唯識)에서 볼 때 물질적 분석을 한 인간게놈지도는 오식(五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육식(六識)인 인식(認識)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칠식(七識)인 아뢰야식이 나오는데 인간게놈지도는 팔식(八識)인 업식(業識)까지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상태라는게 보광스님의 견해이다. 

  보광스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게놈의 ‘놈’은 여래장의 ‘장’으로 부처님 법과 가까워진 측면이 있다. 불교의 가르침을 과학자들이 알았다면 불성(佛性)에 대한 접근까지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게놈지도에 대한 불교적 해석을 정각스님(정각선원 주지)은 이렇게 했다. “유전자의 획득형질은 새롭게 얻어진 내용이나 경험 등 습(習)이라는 것이 ‘익혀진’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짓고 있는 업(業)이 있는데 그것은 유전한다. 유전자 속에서 유전한 지도는 과거에서 익혀져 온 ‘업의 그림’이다”

  정각스님은 수행을 통해 또 다른 ‘그림’을 그려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습득형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들게 된다. 즉 기존의 좋지 못한 지도를 지우고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것이 수행이 갖는 의미이다”

게놈지도를 이용하면 인간의 병고(病苦)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예측에 대해선 일정부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도업스님(동국대 교수)은 “인간의 유전인자 분석을 통해 병이 생겼을 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면 크게 나무랄 때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업스님은 마음과 육체로 구성된 인간에게 있어 단순히 육체에 대한 분석만을 통해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음을 상기시켰다.

  도업스님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초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 요소는 물질 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연기법에 따라 상(相)은 변한다”면서 숙세(宿世)에 익혀온 법에 따라 마음은 달라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인간게놈지도에 있어 마음에 관한 것을 배제하고 단지 유전인자에 관한 정보를 분석한 것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게놈지도를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사상과는 차이점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보광스님은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생로병사는 물직적인 것의 연장으로 부처님이 말하는 생로병사와는 다르다”며 “부처님의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本性)을 깨닫는 차원서 제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불교학의 입장
  불교학 입장에서 철학적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성철 교수는 “동물이나 (그밖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조작하느냐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유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

  또 생명존중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 불교적 해답을 제시하는 숙제도 제기됐다. 도업스님은 “유전자 지도는 살아온 습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불성(佛性)의 입장에서 보면 불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생멸 변화하는 것의 작용이 있으면서 실체는 없는 것을 현대과학자들이 바르게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종림스님은 “위험요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며 “근본적으로는 생명과학연구를 중단하거나 나쁘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종림스님은 “지금 기준과 위치로 미래(의 생명공학)를 재단해서는 안된다”며 “우리(인간)의 선택이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 불교계 과제
  불교계의 과제에 대해선 많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호진스님(동국대 교수)는 “교계에서는 생명공학문제에 대해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면서 “과학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불교를 비롯한 주요 종교들은 2∼3천년전의 ‘오래된 교리’에 머물러 있다”고 불교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호진스님은 “생명공학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해서는 불교와 과학을 동시에 알 수 있는 학자들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카톨릭의 경우 로마 교황청에서 정책적으로 생명공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림스님 역시 불교계의 연구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인간) 개인적 차원보다는 (생명) 전체적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불교교리적 입장이나 윤리적 입장에서 인간게놈문제는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

  보광스님은 “흥분할 것도 없고, 불자들이 침착하게 부처님의 위대한 사상과 가르침에 접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李成洙기자  soolee@buddhism.or.kr  
(불교신문 2001.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