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수행법 - ④ 간경(看經)

  “경전의 지혜로 억겁의 무명 밝힌다” 
    경전은 불보살 가르침 현신한 ‘도량’

   “마음 살피고 실천해야 참다운 수행”

위없이 높고 깊은 미묘한 법 (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기 어려워라 (百千萬劫難遭隅).
제가 지금 보고 듣고 수지하여 (我今聞見得修持)
여래의 참된 뜻을 알고자 하나이다 (願解如來眞實義).)

  경전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중생을 깨침으로 이끌기 위해 진리를 설한 것으로 단순한 글자의 차원을 넘어 불보살님이 현신하고 있는 도량이다. 그리고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간경(看經) 및 독경수행은 경전을 읽고 공부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배도록 해 궁극적으로 성불로 이끄는 수행법이다.
이런 까닭에 수많은 경전에서 수지독송의 공덕을 강조하고 있으며 나아가 경전에 대한 이해와 실천으로도 최상의 깨달음이나 정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간경수행은 초기불교 때부터 부처님이 설법한 내용을 암송하고 이를 체득하는 형태로 이어졌으며 경전이 문자로 정착된 이후에는 간경이 주된 수행법의 하나로 간주돼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간경은 불교의 4대 수행법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됐으며, 오늘날 18개 전통강원이나 8개 전문교육기관(승가대학원·학림·율원)에서도 600여 명의 학승들이 간경수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전국 80여 개의 불교교양대학과 사찰에서도 간경법회 및 수행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며, 특히 금강경독송회나 보림회 등 신행단체들은 생활 속 경전수행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간경수행이 참다운 수행법일까 하는 문제제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여러 불교수행법 중 유독 간경수행만이 오늘날에 이르러서 정당한 수행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부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불교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간경은 모든 수행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서양학문의 잣대로 경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풍토가 만연되다보니 경전을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과 머리로만 이해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의 말이다. 즉 경전을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거룩한 가르침으로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축적 방편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경전은 지혜가 담긴 부처님의 말씀이고 이를 읽는 이는 무명으로 고통받는 중생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지혜로써 자신의 무명을 타파할 때 지식(知識)이 참된 지혜(智慧)가 되고 묵은 업을 닦아내는 깨달음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수 간경수행자들의 지적이다. 이는 곧 서산대사가 좬선가귀감좭에서 “경을 보면서 마음 속을 향해 공부하지 않으면 만 권의 경을 모두 보아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지적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동국역경원 원장 월운 스님은 다음처럼 강조한다. “옛 스님들은 믿기만 하고 알지 못하면 무명만 더해지고, 알고서 믿지 않으면 아상만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경전을 보면서 마음을 살피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야 참다운 간경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경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핵심은 경전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즉 경전을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경전의 내용과는 달리 아만을 쌓고 무수한 시비분별을 일으키는 메마른 지혜(乾解)의 양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부처님이 직접 나에게 설법하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확고한 신심을 바탕으로 경전의 이치를 탐구해 하나씩 깨달아 가면 마침내 모든 이치가 밝아지고 밝은 지혜가 샘솟는다는 것.

  간경수행을 하고 있는 원각사 정각 스님은 “경전이 부처님의 육성임을 간과한다면 여느 책을 읽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럴 때는 이미 간경수행이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경전의 말씀을 절대화하는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나무에만 집착하면 정작 숲을 볼 수 없듯이 문자 하나하나에 집착할 경우 또 하나의 상을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뗏목인 글자에 얽매이지 말고 강을 건너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요체의 파악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 때문에 ‘교를 버리고 선에 든다’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해석도 경전을 무시해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간경에 있어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그 뜻이 무엇인지를 화두 삼아 숙고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곧 간경이 선(禪)과 둘이 아니라는 말을 의미하며, 실제 많은 이들이 간경수행을 통해 선정에 든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간경수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실천이다. 앎이 올곧다면 곧바로 실천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사항을 실천하려는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렇게 생각하려 하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라면 경전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은 곧 부처님의 행을 본받아 닮아가는 것이고, 그럴 때 믿음과 이해도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불교보림회 회장 성상현 법사는 “경전은 불교의 시작과 끝으로 모든 깨달음이 경전에서 말미암고 경전으로 귀착된다”며 “자신의 근기에 맞는 경전을 늘 읽고 독송할 경우 부처님의 지혜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2003-06-11/709호> 법보신문(2003.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