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부적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다. 학업성취를 위해, 사업 성공을 위해, 혹은 새로 산 자동차의 사고방지를 위해 알게 모르게 부적을 품속에 지닌 사람이 많다.

부적의 역사는 깊다. 제천의식을 좋아하던 동이민족은 상고시대부터 부적과 함께 했다. 처음엔 암각화에 새겼다가 거북의 껍질이나 동물의 뼈에도 새겼다. 그리고 점차 나무 조각과 비단, 종이에 소원하는 내용이나 질병과 삼재팔난을 극복하는 벽사의 의미를 그려 넣었다. 물론 이런 염원을 담은 부적은 우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면 모양과 형태가 다를 뿐 부적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역사와 함께해 왔던 부적이 부정적이며 바르지 못한 것으로 낙인 찍히게 된 것은 언제일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이다. 서양의 과학문물을 열광하며 받아들이던 시절, 일제는 우리의 전통 대부분을 미신(迷信)으로 치부하며 금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적 또한 미신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 민족을 미신에 빠진 미개한 족속으로 세뇌시키며, 그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부적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은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같은 야만이며 낙인이다. 미신의 사전적인 의미는 “과학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맹목적 믿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믿는 모든 종교가 미신이어야 맞다. 어떤 종교가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가.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을 간다는 구절이 과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가.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윤회 또한 과학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 모두 과학이나 합리가 아닌 믿음의 영역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적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때가 왔다. 

불교계에도 부적은 정법과 무관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려·조선시대 불교 유물 중 불복장 등에서 출토된 다라니에 다양한 형태의 부적이 실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부적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책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중앙승가대 교수 및 이화여대 객원교수, 고양 원각사 주지로 있는 정각 스님이다. 스님의 논문 ‘불교 부적의 원류와 한국의 불교 부적’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편집해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스님은 연구 과정에서 다라니에 실린 부적의 존재를 인식했으나,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외국에서 부적 연구가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부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시작했다. 이후 고려시대 간행된 다라니 부적을 연구하게 됐는데 동일한 형태가 돈황의 자료에서 발견됐음을 알며 흥미를 갖게 됐고 결국 불교계 안에 있는 불교부적의 연원을 추적하게 됐다.
 

불교부적을 향한 스님의 첫 여정은 돈황에서 시작됐다. 돈황 문서 중 부적이 실린 12종의 사본을 분석해서 각각의 구성 차이와 형태, 변화 양상을 추적했다. 다음으로는 대장경을 주목했다. ‘대정신수대장경’의 도상부 중 불교부적이 실린 총 18종의 문헌을 대상으로 각 부적의 내용과 의미를 검토해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로 시선을 돌렸다. 먼저 고려시대 간행된 부적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 변화 과정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부적은 돈황사본에 실린 부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냈다. 또 조선시대 부적을 연구하면서 도교부적의 수용흔적을 발견한데 이어 현재 불교용품점에서 유통되는 부적의 오류와 왜곡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스님은 고려와 조선시대 간행된 다라니에 불교부적과 함께 실린 불인(佛印)과 탑인(塔印) 등 다양한 인(印)의 수용과 전개까지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은 지금까지 그 존재를 애써 부정해왔거나 혹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불교 문화를 만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각종 문헌에 실린 부적의 내용을 접하면 공부의 기쁨은 두 배가 된다. 옛 사람의 염원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 첫 번째이고, 특정 부적을 지닐 경우 정토(淨土)에 태어나거나 성불을 하게 되며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내용은 부적이 기도, 염불과 다를 것 없는 수행의 방편임을 알게 한다.

최근 입적한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은  “부적은 미신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염원을 담은 문화유산임을 제대로 알고, 이 부적 문화를 새롭게 일구어 간다면 한류(韓流)의 흐름에 아름다운 꽃잎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상찬했다.

김형규 전문위원 kimh@beopbo.com

[1728호 / 2024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