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들이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봤던 시절, 스님들도 국가로부터 공인된 승직(僧職)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험을 거쳐야 했다. 스님들의 과거시험으로 불렸던 승과(僧科)였다. 승과는 왕사(王師) 혹은 국사(國師)가 되기 위한 일종의 등용문이었던 셈이다.
 
승과 제도는 중국 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한다. 다만 이 시기 당나라는 스님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통제하고자 출가에 제한을 두기 위해 승과를 활용했다. ‘불조통기’에 따르면 당 숙종은 ‘백의(白衣)로서 능히 (경문) 500지(紙)를 송경(誦經)하는 자에 한해 승(僧)이 됨을 허락한다’고 했고, 대종(762~779)은 경·율·론 3과(三科)에 대한 시험을, 선종(846~859)은 매년 계·정·혜 3학(三學)에 의거해 도승(度僧)케 하여 도성(道性)이 있거나 법문을 통과한 자에 한하여 도첩(度牒)을 발급하도록 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승과는 스님들의 승직을 부여하는 기준으로 삼국시대 이래 고려, 숭유억불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시행된 것으로 전한다. 다만 본격적으로 승과가 시행된 것은 고려 광종 때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이 전통은 조선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조선시대 승과는 연산군 때에 이르러 중단된 뒤 명종 5(1550)년 허응당 보우 스님과 문정왕후에 의해 복원됐다가 유생들의 반발로 다시 중단돼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조선시대 승과가 시행됐던 서울 봉은사의 승과평(僧科坪)에는 코엑스 건물이 들어서 한쪽 구석에 표석만 남아 있고, 남양주 봉선사의 승과원(僧科院)도 채마밭으로 변해 흔적조차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계종이 2001년부터 스님들에게 법계 5급~1급의 자격을 부여하는 승가고시를 시행, 옛 승과의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불교사에서 승과는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동안 학계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그동안의 연구가 고려시대 시행된 승과 내지 승관제(僧官制)에 집중됐을 뿐 조선시대 시행됐던 승과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는 진행되지 못했다. 
 

책은 역사 속에 묻힌 승과, 특히 조선시대 승과의 양상과 전개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 정리한 연구서다. 중앙승가대 교수 정각 스님은 옛 문헌을 통해 조선시대 시행된 승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함은 물론, 각 시기별 승과의 주관자와 입격자(入格者)를 파악, 역사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조선 승과를 우리 불교사의 중요한 전통 가운데 하나로 소환해 냈다. 

저자는 먼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존재한 승관제에 대해 분석했다. ‘동문선’ ‘삼국유사’ 최치원의 ‘해인사 묘길상탑기’ 등의 옛 문헌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승직 선출과 관련해 일정한 시험절차가 있었음을 찾아냈고,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승과가 고려 광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냈다. 

저자는 이어 사찰 관련 업무를 관장했던 기관인 승록사(僧錄司)의 구성과 양태,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 조선 초에 행해진 종파(宗派)의 통폐합과 승록사의 혁파 과정을 서술했다. 특히 혁파된 승록사를 대신해 설립된 양종도회소에서 승니(僧尼)의 시재행(試才行)과 도첩 발급, 선시(選試, 승과의 별칭)의 주관, 주지(住持)의 작첩(爵牒) 발급 등의 역할을 했음을 밝혀냈다.
 
또한 저자는 조선 초부터 세조 연간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선시의 형식과 이를 통해 수여된 품계를 살핀 뒤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선시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고찰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시기별로 선시가 혁파되고, 다시 복원되며, 나아가 기형화되는 과정을 겪은 원인이 왕족의 친불적 성향과 임진왜란에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조선의 각 시기별 승과의 주관자와 입격자를 파악했다. 조선시대 승과에 입격한 자들은 당대 문인들과 견줄 수 있었던 자들로, 조선시대 불교의 위상을 대변해 줬던 인물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관련 사료 부족 등으로 이들에 대한 현황과 활동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다. 이에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문집류, 불상 조상기와 불화, 화기, 조선시대 간행 불서의 간행질(刊行秩)을 통해 이들 각각의 명단을 찾아냈다. 이는 조선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권오영 전문위원 oyemc@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