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사회통합위원회>가 2011년 5월 주최한 <종교와 사회통합 토론회>에서 발표한 정각스님 원고이다.

                   삶의 종교를 위한 종교 다원주의

                                                              정각 / 동국대⋅조계종 교수아사리

  1. 삶의 종교를 위하여

  보편적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네 가지 가치가 있음을 흔히 말한다. 즉 진리[眞]와 선(善) 및 아름다움[美]과 성스러움[聖]을 뜻하는 바, 진⋅선⋅미의 가치 추구와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의 학문적 성과는 종교학의 학적 토대 위에 성스러움[聖]에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이다.

  성스러움(聖, Das Heilige)이란 무엇인가? 오토(R. Otto)와 엘리아데(M. Eliade)가 말한 바 두려움(tremendum)과 끌림(fascinans)의 영역, 초자연적 질서의 저편에서 우리를 칸트류의 격률(格率)과 요청(要請)에로 불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조셉 켐벨(Joseph Campbell)은 Misa, Mittere의 어의 분석을 통해 종교의 기능으로서 성속(聖俗)의 관계성을 통찰한 바 있다. 즉 현재의 세속적 질서에 안주치 말고 성스런 영원의 세계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기를 촉구한 채, 현재의 나를 영원의 세계에로 내모는, 현재적 새속적 삶으로부터 우리를 추방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참된 역할이 됨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에 종교는 “너는, 어디 있느냐?”란 존재적 질문에 “ADSUM (hic et nunc)”이란 자기정체성을 발설할 수 있도록 대중을 이끈 채, 현존재의 해방(Pasca)을 얻을 수 있도록 함에 존재 의미가 있을 것이다. “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를 말했던 삶의 철학(lebens philosophy)의 입장을 넘어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을 위해, 공동선(共同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가운데 [삶의 종교]는 그 영역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이컨(F. Bacon)이 말했듯, 참다운 삶의 인식을 향해 나아감을 방해하는 우상(Idola)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무리중심적 사고로 인한 종족의 우상, 편견에 의한 동굴의 우상, 권위⋅철학설의 미혹으로 인한 극장의 우상 가운데 우리는 빠져 있는 바, 특정 집단에 속한 채, 집단적 도그마로 인한 풍설, 권위⋅철학설에 얽혀 있는 경우가 있다.

  2. 종교 다원주의적 이상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나자렛 예수는 말하였다.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는 것이다”라고 고타마 싯다르타는 말하였다. 한편 인도(印度)의 베다(Veda) 문헌에서는 “진리는 하나이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서 그를 칭하고 있을 뿐이다(ekam sat viprah bahudha vdanti)” 하는 바, 진리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이라면 그 달빛은 호수에도 강물에도, 드넓은 바다와 나의 찻잔 가운데 빛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호수와 강물, 바다와 찻잔에 비춰진 진리의 모상(模像)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는 찻잔 속의 달이 아닌, 호수와 강물, 바다 속의 달이 아닌 달 본래의 밝음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진리의 모상(模像)에 접근하는 여러 길. 이는 다원주의(多元主義)에 입각한 수많은 종교적 가르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란 동⋅서방 교회의 일치를 말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을 넘어 세계종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원리로,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 평화회의’ 이래 1993년 인도에서 열린 ‘세계종교대회 백주년기념대회’에서는 각 종교 교리를 초월한 인류 공동의 ‘지구윤리(A Global Ethic)’도 제정하기도 하였다.

  최초 종교 다원주의의 등장에 당시 교황 레오 13세는 이를 ‘무분별한 집회’라 규정한 채 가톨릭의 절대성을 희석시키는 종교 평등주의(religious indifferentism) 사상에 우려를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천년의 전개와 요한 바오로 2세의 ‘내 탓이오(Mea culpa)’ 운동은 동⋅서방 교회의 ｢화해｣라는 현시대적 보편 가치를 확산시켰던 바, 이를 발전시킨 종교간의 대화가 국내 종교계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3. 배타성과 포괄주의의 그늘

  그럼에도 종교 다원주의의 그늘에 가려진 종교 패권주의의 양상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흔히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 이해 방식으로는 알랑 레이스(Alan Race)가 제시한 배타주의(exclusivism)와 포괄주의(inclucivism), 다원주의(pluralism)를 들고 있는 바, 배타주의와 포괄주의가 만연한 현시대적 우려 속에 다원주의의 주장은 다소 허망한 외침처럼 들려지는 것이다.

  한 예로, 가톨릭은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운데 유화적 입장에 선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을 공포하였다. 한편 칼 라너(Karl Rahner)에 의해 제시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란 표현은 에큐메니즘의 이념적⋅지리적 확산을 말하는 듯 보이나, 그 안에는 구원의 사실(Heilstatsache) 아닌 <구원 가능성(Heilsmöglichkeit)>만이 존재함을 언급한 채 “타종교에도 구원의 은총이 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것이다”1)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중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수 있다(3항)”는 입장은 동방정교 내지 기독교의 견해를 간과하고 있음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외에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을 지향하는 어의적(語義的) 저변에는 ‘전세계 사람이 거주하는 곳’을 향한 ‘성취론적 포괄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한편 죤 콥(John B. Cobb, Jr)은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하나의 궁극적 실재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 바 있다. 즉 기독교는 유한한 현상세계의 기저(underlying)로서 궁극적 실재를 말하나, 불교는 유한세계 자체의 실재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2) 이는 이원론(二元論)과 불이론(不二論)의 사상적 괴리감을 말한 것으로, 폴 니터(Paul F. Knitter)의 경우 “이렇듯 공통 근거가 부정된 속에서 대화의 가능성이 어디 있는가? 아니 왜 대화해야 하는가?”3)하는 회의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종교 다원주의적 입장은 기독교 안에서 이단으로 매도되는 예가 존재하며,4) 다원주의에 대한 신학자들의 회의론적 견해가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즉 “기독교에는 구원이 있다. 불교에는 해탈이 있다. 기독교에도,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기독교 신학자의 정체성에서 모순이 생기게 마련이다”5)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의 인식 위에 위 논자의 경우 “종교간의 대화란 형이상학적(선험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대화와 협력이라는 기능적(도구적) 수준에서 찾아져야 함”을 말하는 가운데 “(종교 다원주의는) 현장의 목회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선교사업을 보다 더 잘 펴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6)는 모호한 논리를 말했던 바, 이는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의 존재”를 확보한 채 종교간 긴장관계를 유보하자는 논리로서만 읽혀질 수 있는 부분이다.

  4. 원리주의의 함정

  그럼에도 위 긴장의 유보 상황에서도, 여전히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종교간 갈등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근래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바미안 석불을 포함한 불상들은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것으로, 있어서는 안될 유산이며 우리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것”이라 말한 것 같이, 오늘도 여전히 단군상 파괴 행각과 ‘예수천당, 불교지옥’의 슬로건은 지하철과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횡행하고, 소수 극렬분자들에 의한 폐불(廢佛) 행각이 자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와중에 화계사 앞 한신대 학생들이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걸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메시지가 여전히 전달되고 있다. 또한 금년에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는 ‘자유 안에서 진리의 추구: 그리스도인들과 불교도인들은 평화 속에서 산다’를 주제로 한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간격의 틈 사이에서 여전히 포괄주의적 이해는 선교론적 양태로 전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89년 교황청 ｢비기독교인 선교국｣의 정기간행물(Bulletin) 중 ｢불교국가는 이렇게 공략하라(THE CATHOLIC PLOT AGAINST BUDDHISM)｣는 내용이 공개되어 불교계에 충격을 준 바 있었다. 그 문서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불교의 내부에 새롭게 태어나려는 지금…우리는 선교할 것이며, 불교국가에 교회를 세우는 굳건한 반석을 다지게 될 것이다.” 또한 구체적 표현으로서 다음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였다. “수백년 동안 불교도들은…미륵불이 나타나리란 희망 속에서 그가 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부처는 예수, 즉 메시아로 불리는 사람에 대해 예언을 하였다. 메시아는 부처에 의해 예언되었던 것이다.”

  한편 년전 한국교회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어게인(Again) 1907'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바, 화해와 용서, 그리고 선교의 비전은 당시의 주 테마였었다.7) 그럼에도 2006년 6월 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Again 1907 in Busan’에서는 "교회의 부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사찰이 무너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란 구호가 난무하였다. 또한 ｢에즈 37 찬양인도자학교｣의 ‘주님의 향기’조(6조) 5명이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삼성동 봉은사에서 ‘땅밟기 기도’를 한 사건이 생겨난 바, “영적 전쟁의 한 방법으로서 땅 밟기 기도는…선교전략으로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8)는 한 신학자의 견해는 지역갈등의 한반도에 이념갈등을 더욱 부가하는 측면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세태 속에 ‘한국에서의 종교 다원주의’란 이념은 과연 무엇인가? 이에 오늘처럼 계속 되풀이되는 ‘종교간 대화’는 공허한 논의의 장(場)이 되어질 뿐으로, 차라리 ‘종교간 상호비방 금지 협약’ 등 보다 실질적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4. 종교 패권주의와 정치

  위 배타주의와 포괄주의적 입장은 헤게모니의 확충과 사회적 지분 확보의 논리 속에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 한편 ‘그 지역 종교는 그 지역 통치자가 결정한다(cuis regio, eius religio)’는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Augusburg) 평화협정｣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 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럼에도 선거 때면 행해지는 ‘대선특별기도회’ 내지 ‘당선기원법회’ 등은 마치 데바닷타가 아사세 태자에게 제의한 바와 같이, 새로운 왕과 새로운 종교지도자가 결탁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립하고자 했던 망상에 동의하는 듯하다.

  이에 ‘크리스천이 모은 믿음의 표, 기도의 표, 구국의 표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마스터 키’임을 말했던 성시화(聖市化) 운동본부의 캠페인,9)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겨났던 자치단체장들의 성시화 발언, 2004년 5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서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봉헌사 낭독은 종교와 정치가 밀착하여 사회통합 내지 종교 화해에 부정적 역할을 했던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몰표의 영향력을 미끼로 정치인 줄세우기, 무릎 꿇히기 등이 행해지는 세태 속에 현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고소영내각’이란 폄칭을 얻기도 하였던 바, 근래 등장한 ‘사학법 개정’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 등은 정교(政敎) 분리의 원칙이 사회 이슈로서 등장케 한 사건이기도 하였다.

  최근 야당의 한 대표적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 종교집회장을 기웃거렸다는 반성적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9년 1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공무원법(제59조2항), 지방공무원법(제51조2항) 내에 종교중립의 의무 조항이 신설되었음은 최근 정교(政敎) 분리의 사회적 요구가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2005년 종교문화연구소에서 발표한 ‘미국의 종교자유 현황과 정책방향’ 자료에 따르면 미국내 7,600여 가지의 증오범죄 중 인종적 편견에 근거한 것이 70%, 종교적 편견에 관한 것이 18%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미국은 [증오범죄예방법]을 제정했던 바, “그 누구라도…인종, 피부색, 종교, 출생 국가 때문에 고의적으로 그 사람에게 신체적 부상을 초래하거나…초래하고자 시도한 자는 10년 미만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하고 있다.

  2008년 조계종 종교편향위원회에서는 미국과 같이 [증오유발금지법] 같은 법률적 제재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었다. 이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종교차별금지법]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진일보한 정부 정책안은 종교평화 내지 종교간 균형의 평균대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한편 종교와 정치권력의 야합과 헤게모니 장악 시도가 현실화되는 세태 속에, 오늘날 ‘종교간 대화’란 상호 헤게모니의 양보와 사회적 지분 확보의 노력 중단 양태에로 전환되어야 할 것임을 촉구하고 싶다.

  5. 미네르바의 올빼미 되어

  헤겔(F. Hegel)은 “철학이 이성의 회색에서 그 회색을 더해갈 때”를 인지한 채 시대적 우려를 전한 바 있다. 또한 “그럼에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하여 철학에 대한 자기규정을 부여했던 한편, 절대정신으로서 세계정신의 등장을 고대하기도 하였다.

  요즘 시대적 우려 속에 자기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하는 시대의 인식자로서 ‘미네르바의 올빼미’ 되어 시대정신의 발흥을 지켜보아야 함은 우리 종교인들의 자각을 일깨워 주는 측면이 될 것이다.

2) John B. Cobb, Jr., Toward a Christocentric Catholic Theology, Toward a Universial Theology of Religion, p.98.

3) John H. Hick and Paul F. Knitter, The Myth of Christian Uniqueness : Toward a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p.180.

4) 손성호, ｢아, 에큐메니칼｣ , [제3시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09.10), p.18.

5) 고재식, ｢건전한 다원주의론을 위한 제안｣, [기독교사상](제47권 제1호, 통권 제529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1), p.271.

6) 고재식, ｢건전한 다원주의론을 위한 제안｣ [기독교사상](제47권 제1호, 통권 제529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1), p.276.

7) 신광철, ｢한국교회는 대부흥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한국 기독교와 역사](제26호) (서울: 한국 기독교역사연구소, 2007.3), p.124.

8) 노윤식, ｢땅밟기 기도에 대한 선교신학적 평가｣ ｢크리스천투데이｣(2010, 12, 16일자).

9) ｢기독교뉴스｣, 2011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