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의 단상

정각스님 | 논설위원·고양 원각사 주지

  납월 납일, 제석(除夕)날 자정이 되면 승려들은 마을로 내려와 “제(祭)를 올릴 쌀을 주시오!” 하고 시주를 구하는데, 승려들의 외침에 사람들은 “새해가 밝았군!” 말했다고 <열양세시기>는 적고 있다.

  ‘승려의 한해’인 구랍(舊臘)과 함께 세납이며 법랍이 더해간 새해 벽두. 사찰에 새벽이 찾아오면 대중들은 법당에 모여 원단례(元旦禮)를 행한다. 불.법.승 삼보 및 제불보살과 신중(神衆), 고혼(孤魂), 단월.친척.대중에 대한 새해 인사로써 통알(通謁)을 행한다. 통알은 새로움의 의미를 갖기에 연소한 사미(沙彌)가 게송을 선창하는 바, “복청대중(伏請大衆) 일대교주(一代敎主) 석가세존전(釋迦世尊前) 세알삼배(歲謁三拜)…”를 외치는 낭랑한 목청과 함께 승가의 새해는 시작된다.

  동주도반(同住道伴) 합원대중(合院大衆)까지를 청해 세알(歲謁) 삼배를 올린 대중들은 개산조 및 중흥조, 조사(祖師) 각령(覺靈)을 위한 종사영반(宗師靈飯)을 행하기도 한다. 이에 <고려도경>에서는 “원단(元旦)과 초하루, 춘추(春秋)와 단오에 조상 신주에 제향 드리는데, 부중(府中)에 화상을 그려놓고 승려들은 범패를 노래하며 밤낮을 계속한다” 하여 조상을 위한 옛 다례(茶禮)의 일면을 전하고도 있다.

  다례를 마친 가정에서는 일년 내내 집안에 액운이 끼지 않게끔 세화(歲畵)를 붙인다. 닭의 형상이나 호랑이, 처용 내지 김(金)장군과 갑(甲)장군 형상을 대문에 붙이는 바, ‘김장군과 갑장군은 사천왕의 신상’이라 <동국세시기>는 전한다. 그리고 절을 찾아 “절에서 만든 떡 한개를 속세의 떡 두개와 바꾼다” 하는데, ‘절 떡[僧餠]을 얻어 아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동국세시기>는 또한 전하고 있다.

  이어 승가에서는 사대부가에서 행해진 ‘승경도 놀이’와 비슷한 성불도(成佛圖) 놀이를 행했던 바, 성불도는 불교식 수행차제와 육도의 윤회전생을 통한 윤회관을 제시하면서, 염불과 참선.교학을 통해 윤회의 길을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름을 일깨웠던 것으로, 이렇듯 새해 벽두의 승가 의례와 함께 새해 하루가 시작된다.

[불교신문 2786호/ 1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