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 팽배해 있는 종교 패권주의의 빗나간 양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로마 가톨릭은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유화적 입장에 선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을 공포했다. 한편 칼 라너에 의해 제시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란 표현은 에큐메니즘의 이념적.지리적 확산을 말하는 듯 보이나,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이란 어의(語義) 저변에는 ‘전세계 사람이 거주하는 곳’을 향한 ‘성취론적 포괄주의’가 전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10여년 전 ‘불교국가는 이렇게 공략하라’는 교황청 내부문서가 폭로되어 우리에게 충격을 준 바 있었다. 한편 ‘그 지역 종교는 그 지역 통치자가 결정한다(cuis regio eius religio)’는 원리는 종교와 정치권력과의 상관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이에 따른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충코자 하는 종교간 노력이 암암리에 보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세태 속에 1993년, 변선환 목사는 “먼저 타종교, 특히 불교인들에 대해 죄책 고백을 하며 철저한 회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하였다. 1999년 동방정교와 가톨릭은 1000년만에 역사적 화해를 이루어냈던 한편, 근래 이슬람교 시아파 지도자 하타미 대통령은 이슬람과 기독교문명과의 화해를 다짐하기도 하였다.

 

2000년 12월, 한국종교협의회 발표의 ‘새 천년 종교인 윤리헌장’은 “인류의 양심인 종교는 인류의 위기를 외면한 채 자기 종교의 우월성과 배타성으로 종교간 분쟁은 물론 종교인 간의 긴장과 갈등을 심화시켜 왔다”는 반성과 함께 “종교간 대화를 통해 화해 협력과 일치를 실현한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다짐은 다만 이념적 지향점으로 존재할 뿐이다.

 

최근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바미안 석불을 포함한 불상들은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것으로 있어서는 안될 유산이며, 우리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것”이라 말하였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는 단군상 파괴 행각, 사찰 방화 등은 위 화해의 주장들이 다만 공허한 논리로서 남아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자종교 중심의 논리 속에 타의 이념을 제거코자 하는 노력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절대주의적 편견의 산물로서, 금세기 문화 상대주의적 시각의 확산은 더 이상 레비 스트로스 류(類)의 인류학적 견해뿐만이 아닌 종교 이념의 새로운 시각 가운데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결코 내가 사건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이 아닌, 세계일화(世界一花) 즉 인다라망(因陀羅網)적 이념을 통해서만 진정한 다원주의가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천지동근(天地同根)의 원리를 바탕한 가운데 ‘화해를 통한 선량한 공동체(bonum commune)’가 이룩될 수 있으며, 그 가운데서 우리는 호수와 강물, 바다와 찻잔에 비춰진 진리의 모상을 자유로이 추구하는 가운데 진.선.미를 통한 성스러움 자체, 달 본래의 밝음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 2599호/ 2월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