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논설위원ㆍ경북 문화재위원


붓다의 무기(無記)의 정신은 존재론, 형이상학을 배제한다. 차라리 인식론적 차원 속에서 현상질서에 대한 인식과 그를 통한 삶의 원리를 발견, 그것을 실행할 것을 강조한다. 현상질서의 선행적 인식은 고(苦)로부터 시작한다. 삶의 영속성을 살아가는 가운데 죽음과 태어남의 끝없는 순환 속에 업(業)으로 인한 휩쓸림. 그 윤회적 차원 가운데 업의 청정과 소멸원리는 고(苦)의 단멸(斷滅)을 요구한다.

열반적정 어찌 이루나…

이에 불교는 고의 인식과, 고의 원인, 고의 소멸,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 등을 통한 해탈의 실천적 원리 즉 사성제(四聖諦)와, 일체개고(一切皆苦)를 기저한 연기법(緣起法)의 통찰로부터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를 바탕으로 아공(我空)을 통한 윤회의 종식, 아집(我執)을 떠난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팔정도(八正道) 실행을 통해 초기 수행자들은 끝없는 해탈(解脫)과 궁극적 열반에 나아가기를 희구하였다.

초기 수행자들은 붓다의 모범에 따른 수행원리에 의해 충실한 삶을 살았으리라 이해되며, 이에 현 수행자상은 ‘팔정도의 실행을 통해 열반적정의 경지에로 나아가는 자’ 가운데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불교 수행의 기본원리로 인식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궁극적 열반을 찾아나서는 과정 속에서 “수행자란 탐.진.치의 불길을 잡는 소방수”임에도 불구하고 “소방수이어야 할 수행자들이 중생들처럼 불이 타오를 여건이나 만들고, 타는 불에 부채질하고 있다(도법)”는 한국불교 수행자에 대한 현시대적 우려는 위 수행원리의 표피에 묻어진 ‘얼룩’에 해당할 것으로, 그 ‘얼룩’을 닦아내는 부단한 노력 속에 인식론적 차원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 ‘얼룩’이란 무엇인가? 이는 정견과 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 등 팔정도의 실행 자체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서 생겨난 산물이다. 이에 ‘팔정도의 실행을 통해 열반적정의 경지에로 나아가야 할 자’로서 현시대 수행자들은 위 원리에 따른 바른 소견과 인식 등으로 스스로 나아갈 길을 설정할 때, 현상적 원리의 표피에 묻어진 ‘얼룩’들은 지워질 것이다.

“어버이를 사직하고 출가한 까닭은 법계의 평등한 도리에 수순하고자 함(割愛辭親 法界平等)”이라는 <자경문> 가운데 글을 다시금 상기함은, 시대적 우려 속에서 자기몰락의 길을 걸을 때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하는 시대의 인식자로서 ‘미네르바의 올빼미 되어 시대정신의 발흥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수행자의 자각을 일깨워 준다.

탐진치 독화살 제거해야

옛 수행자들 삶에 비추어 볼 때, 현시대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견해 및 그 실행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방안을 설정해야 할 것으로, ‘인식 전환’이란 논리로서 우리는 팔정도 실행에 따른 오류의 ‘얼룩’을 극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초기불교 수행자로서 모범을 보인 붓다의 근본정신 속에서 시대정신의 발흥을 일깨워야 한다. 현재의 승가 현실 속에, 근본정신에의 회귀는 붓다가 보리수 아래서 행한 마라(魔羅)와의 사념(思念) 전쟁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 사념 전쟁 속에 현시대의 마라는 누구인가?

불현듯 어느 틈엔가 우리 가슴에 날아든 탐.진.치의 독화살을 제거해 가는 가운데, 부단한 인식 전환 가운데 혜해탈(慧解脫)의 작은 오솔길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 2667호/ 10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