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논설위원·경북 문화재위원


구약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관련된 다음 기사를 전한다. 금단의 열매, 빨간 사과를 따먹고 난 아담에게 야훼가 묻는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그때 벌거벗었다는 부끄러움을 알아차린 아담은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채 황급히 대답한다. Adsum…. “‘지금, 그리고 여기’ 있습니다”라는 히브리어 식의 표현이다. 이내 무심코 말을 내뱉은 아담은 자신의 현 상황을 직시하게 된다. 야훼와의 약속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자신의 현 상황을… 그리고 그 속에서 아담은 인간 실존의 공포를 느낀다. 존재의 두려움이 뇌리를 스쳐 지난다.

‘나 자신을 찾는 길’

20세기 초, 그 영향력을 한껏 행사했던 실존철학(實存哲學)은 Adsum에 대한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라는 라틴어식 표기를 종종 사용하였다. ‘지금’이란 시간성과 ‘여기’라는 공간성, 즉 시공간의 좌표에 선 인간 실존의 의미성을 궁구코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특히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의미의 지평 및 역사성의 개념을 추론하는 속에 ‘인간 현재의 인식’을 무수히 요구하기도 하였던 바, ‘지금, 그리고 여기’란 표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가톨릭 구원론 중 ‘준종말론(Semi-eschatology)’이란 표현이 있다. 현세의 삶 속에 미래의 종말론적 평화를 예견한다는 것으로, 이는 불확실한 미래 종말론에 대한 수정적 원칙이다.

한편 원효(元曉)는 유심정토(唯心淨土)란 표현을 사용했던 바, 정토란 타방(他方) 내지 내세에 존재할 것이 아닌, 마음 속 번뇌가 사라지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정토가 된다는 것이다. 즉 심청정(心淸淨) 국토청정(國土淸淨)의 유심정토가 현현할 것임을 설하였다.

이는 현세의 인간,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실제적 개인의 현실적 행위, 그 행위의 기쁨 속에 종말론적 평화며 정토가 구현될 수 있다는 현실적 이념 정립이다. 일기일회(一期一回)적 삶 속에서, 현재의 질서 속에 평화를 찾아 나선다는 것. 이것은 우리 숙명(Fatum)적 인간에게 ‘현실적 삶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적 구속’의 사슬을 풀어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은 자체존재(Dasein)로서의 개인을 발견하게 된다.

신약 <마태오복음>에서는 다음 구절이 발견되기도 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얻으리니…”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 인간 실존의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온통 자신을 비워버린 그곳에서 비워진 마음은 또다시 채워질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빔’과 ‘참’. 그렇다면 ‘빔’이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자신 실존의 인식’이다. 자신 실존의 인식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 속에 자신을 그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나(我) 자신을 찾는 길이다.

무한대의 공간 금차선원

최근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인 간화선을 알리고자 금차선원(今此禪院)이 문을 열었다. 금차(今此)란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을 말하는 바, “지금 이 순간 깨어있으라”는 간화선의 핵심 가르침을 상징한다. ‘지금, 이 순간’에는 시간성은 있으되, 공간성이 배제되어 보인다. 아니, 서울 신정동에 위치한 금차선원은 그 공간이 무한대로 열린 가운데, 무한한 공간 자체가 선원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 무한공간 속에서 우리는 마치 군부대의 점호 때 ‘adsum’이란 답을 행하듯, 매순간 Adsum, 금차(今此),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삶 속에 ‘빔’에서 ‘참’을 얻는 대답을 마련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불교신문 2676호/ 12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