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논설위원·경북 문화재위원
<회남자(淮南子)> 남명편(覽冥篇)에는 달과 관련된 다음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 하나라 요임금 시절,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떠오르고 많은 괴물이 출현해 백성을 괴롭혔다. 임금의 명을 받은 하늘신 예(羿)는 9개의 태양을 화살로 쏘아 떨어뜨리고 모든 괴물을 살해하였다. 이에 하늘 천제(天帝)는 자신 아들인 아홉 태양을 죽인 예와 그의 아내 항아(嫦娥)를 인간으로 타락시켰고, 하나라 백성들은 예(羿)를 왕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후 예는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사약을 얻어 다시금 신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예가 구한 2알의 불사약 중 하나를 훔쳐 먹은 항아는 하늘에 올라 달[月]의 신이 되었다. 그리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를 시켜 또하나의 불사약을 방아에 찧어 곱게 가루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예는 죽어 태양신이 되었고, 항아와 예는 부부의 만남을 기약하며 서로를 뒤쫓아 하늘을 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이야기에서 계수나무 아래 토끼는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방아를 찧는, 영생(永生)의 전달자로 묘사된다. 5세기에 조성된 평안남도 덕화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진 태양과, 토끼가 그려진 달이 묘사된 것은 피장자의 영생을 기원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인도 산스크리트어에서는 달을 Śaśī 또는 Śaśin이라 적는다. 이 단어는 에너지 내지 성력(性力)을 뜻하는 Śakti와 동의어로 쓰이는 바, 단어 안에 끝없는 생명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Śaśī는 야토형신(野兎形神)이라 한역되기도 한다. Śaśī란 단에 자체에 <토끼>의 뜻이 내재되어 있음을 나타낸 말로, 옥토(玉兎)란 표현 내지 우리말의 옥토끼란 말 자체는 달과 동의어로 생명의 원천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간지에서 묘(卯)는 오행 중 목(木)에 배대되어 있으며, 토끼날 짠 실을 ‘톳실’이라 하고 ‘명줄’이라 칭하는 한편, 용왕의 딸을 살리고자 토끼 간을 구하려는 구토설화(龜兎說話)는 모두 토끼의 생명력을 의존해 생겨난 예들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토끼의 생명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부처님 전생담 <자타카(jataka)>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전생에 토끼의 몸을 받고서 녹야원 인근 숲에서 여우, 원숭이와 함께 보시바라밀을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제석천이 그들 수행 정도를 시험하기 위해 늙은이의 모습을 한 채 “나는 지금 배가 몹시 고픈데 먹을 것을 건네 다오” 하였다. 여우는 강변에서 잉어를 한 마리 물고 왔고,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 과일을 따서 노인에게 드렸다. 토끼만은 빈손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다.
이내 토끼는 여우와 원숭이에게 덤불 섶을 준비해 불을 피워달라 말하였다. 불길이 한창 솟아오르자 토끼는 이렇게 말하였다. “노인이시여! 저는 재주도 없고, 찾아 나서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작은 제 몸이나마 한 끼의 식사로 드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마친 토끼는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이내 제석천으로 화현한 노인은 토끼를 되살린 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마음씨에 크게 감동하였다. 이같은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토끼를 달 속에 남겨 두어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겠다.”
이렇게 하여 토끼는 죽었던 생명을 되살릴 수 있었고, 밝은 달 계수나무 밑에 사는 토끼를 보며 우리는 “비워지면 채워질 것이요, 버림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육조단경> 반야품은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구함은 마치 토끼뿔을 구함과 같다(離世覓菩提 恰如求兎角)” 하는 바, 토끼해를 맞으며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매순간의 용심(用心) 가운데 영원한 삶의 기틀을 찾아 나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불교신문 2685호/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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