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성(香聲)

  향성(香聲)이란 ‘향기 소리’를 말한다. 경봉스님이 평소 납자들에게 즐겨 써주시던 문구(文句)로, 내 방 벽에 걸려진 문구의 의미를 가끔 되새겨 본다.

  향기에 웬 소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옛 사람들은 ‘문향(聞香)’ 즉 ‘향기를 듣는다’ 하여 냄새 맡음을 넘어 ‘향기 들음’이란 심미적(審美的) 표현의 사용에 주저하지 않았다. 조선 중기 문인화가 김시(金褆)의 매조문향도(梅鳥聞香圖)는 ‘한 마리 새가 매화 향기 듣는 모습’을 탈속적 분위기 속에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관음(觀音)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청음(聽音) 즉 ‘소리 들음’을 넘어 ‘소리를 본다’는 것으로, 이런 표현들 속에는 언어적 상징과 관념적 서정을 능가하는 초월적 인식이 내재해 있음을 말할 수 있다.

  향성(香聲)의 향기

  그렇다면 향성(香聲)의 ‘귀로 듣는 향기’는 어떤 향기를 말함인가! 한겨울 쌓인 눈 위에 핀 붉은 매화 향, 설중매(雪中梅) 아스라한 존재의 향기는 코의 냄새뿐만이 아닌 귀까지를 동원해야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경봉스님은 한매토홍고불심(寒梅吐紅古佛心)이란 글을 또한 즐겨 쓰셨다.
  “한겨울 매화의 붉은 향기, 옛 부처의 마음일세”란 표현은 존재의 외포(外包)를 넘어선 내연(內延)을 볼 수 있어야 함을 촉구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존재의 내연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경봉스님은 적음(寂音)스님에게 보낸 편지글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대숲 흔드는 소리, 아~ 귀를 간질이는 이슬 구르는 소리, 이 모두가 다 적음(寂音)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복잡한 삶에 이 애끓는 소리를 듣는 이 있으니, 그대 얼마나 행복한가…”

  아, 소리 소리 가운데 적정(寂靜)의 차원 존재하니, 만물상(萬物相) 가운데 그 적정의 향기 소리 들을 수 있다면 우리 또한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이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의 현현임을 말하는, 화엄 법계연기(法界緣起)를 능가하는 육대연기(六大緣起)의 참다운 인식 속에 생겨진 표현이라 하겠다.

  향기로운 일상

  우리는 일상 가운데 수많은 소리를 듣는다. 인생의 다양한 향기 접해 듣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일상을 살아가는 바, 무수한 부처를 만나고 무수한 깨달음을 얻어 갖는다. 아니 일상 자체가 하나의 향기 되어 그 향기 나의 귓전에 울려야 할 것이다. 이에 경봉스님은 다시(茶詩)를 통해 다음의 촉구를 전하고 있다.

  “푸른 물 찬 소나무에[碧水寒松] 달은 높고 바람 맑아[月高風淸] /

   향기 소리[香聲] 깊은 곳에[香聲深處] 차 한잔 들게[相分山茶] /

   차 마시고[遇茶喫茶] 밥 먹는 일[遇飯喫茶] /

   인생의 일상[人生日常] 삼매의 소식이니[三昧之消息] /

   이 소식을 알겠는가[會得嚒]! 차[茶].

  향기 소리[香聲] 깊은 곳[香聲深處]은 적정의 삼매를 말한다. 그 적정삼매 속의 다반사(茶飯事)처럼 우리는 일상의 향기 감촉하는 가운데 오늘도 ‘영축산 봄 향성(香聲)’ 듣고자 현상 가운데 부처와 삼매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세간의 소음 가운데 무수한 견처(見處)를 발견한 옛 노승(老僧)의 향성(香聲)에 귀 귀울여야 할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일상 가운데 삼매를 얻어 갖는 바른 길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불교신문 2495호/ 1월24일자]

2009-01-20 오후 10:25:36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