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천안

자애로움과 연민의 마음

  정각스님/ 논설위원ㆍ고양 원각사 주지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 하며, 불교는 ‘자비(慈悲)의 종교’라 칭한다. 여기서 자(慈)는 범어(梵語) maitrya의 번역어로 ‘사랑 내지 자애로움’을 말한다. 이는 히브리어 Hesed의 번역어인 기독교적 아가페(agape)와 비슷한 뜻이라 하겠다.

한편 비(悲)는 범어 karuna의 번역어로 ‘슬픔 내지 연민’을 뜻하는 것으로, 기독교적 사랑을 넘어 불교 특유의 초월적 실천윤리를 제시하는 표현이 된다.

<삼국유사> ‘분황사천수대비 맹아득안(盲兒得眼)’조는 불교 자비의 극치를 보이는 다음 예를 소개한다. 경덕왕 때 한지리에 사는 희명(希明)의 5살난 아이가 눈이 멀어, 분황사 천수대비(千手大悲) 앞에서 다음 노래를 불러 눈을 뜨게 되었다.

‘무릎 꿇고 두손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어 삶아두나이다. 즈믄(千: 천개) 손 즈믄 눈 가지셨으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어 둘 없는 내오니 하나를랑 주시옵시라. 아아 나에게 주시옵시사. 나에게 주시면 자비가 클 것이로이다.’

이는 천개 눈 중 하나를 떼어 중생에게 건네는, 관음보살 대자대비에 의탁한 중생의 비애를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성숙한 불제자들은 대자대비의 청구자인 ‘희명의 5살난 아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오히려 자비 연민의 실천자 되어야 할 것으로, 20세 초반 니체(F. Nietzsche)의 전기를 읽던 필자는 니체 어린시절 모습에서 연민의 실천을 발견하였다. 철학자 발터 니그(Walter Nigg)는 니체의 전기 중 7살 어린시절 니체의 감수성에 얽힌 다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마을 언덕에서 뛰놀던 어린 니체는 언덕 밑 수레 가득 짐을 실은 우마차와, 그것을 끌고 힘겹게 언덕 오르는 소 한 마리를 목격하였다. 농부의 채찍 맞으며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언덕 오르는 소의 눈과 마주친 니체의 눈에서는 한줄기 뜨거운 연민의 눈물 흘러 내렸다.

채찍 맞으며 힘겨운 발걸음 옮기는 큰 눈망울의 소, 그 광경 바라보며 우리는 어린 니체와 같은 연민의 눈물 흘릴 수 있는가? 타존재의 슬픔을 보고 한 방울 눈물 흘릴 줄 아는 바로 그 마음이 관음보살의 마음이며, 기독교적 사랑 넘어 불교적 연민을 촉구하는 척도라 하겠다.

[불교신문 2501호/ 2009년 2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