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논설위원ㆍ고양 원각사 주지

1990년대 초반, 필자는 2년여 동안 인도 바라나시(Varanasi)에 머문 바 있었다. 몹시도 비가 뿌리던 어느 여름날, 갠지스강 인근 모띨랄 서점을 찾은 필자는 서가에서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의 신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가에 선 채 <달마(Dharma)>라 이름 붙여진 책을 훑어보던 중 책 뒷날개에서 다음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성서에서 예수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牧者)로 묘사된다. 그러나 불교에서 부처는 ‘중생 누구나가 한 마리 길 잃은 양이며, 동시에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임을 말한다.”

 

그 책을 사들고 돌아오던 필자는 비 뿌리던 릭샤 안에서 종교 구원관의 차이에 대한 깊은 상념에 잠긴 바 있었다.

 

이후 1997년 가을, 서울에 머물던 필자에게 가톨릭대학 학회지 <신학과 사상>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각 종교의 구원론’에 대한 특집을 계획하며, ‘불교 구원론’에 대한 논문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위 제목은 이전 바라나시 우중(雨中)의 상념을 되새기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흔히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요,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 칭한다. 신(神)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음이 아닌, ‘내 손안에 구원의 열쇠 쥐어져 있다’는 그노스티시즘(Gnosticism, 靈知主義)의 부활, 중세 수도원의 이념적 반란 같은 발상을 불교는 전하고 있다.

불교는 신(神)에 대한 신앙이 아닌 한에 있어, 구원의 의미는 자내증적(自內證的) 성격을 갖는다. 신론(神論) 아닌 인간론 내지 불성론(佛性論) 위에, 구원의 요청은 자신 내면을 향한 촉구가 된다.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라 한다면, 그 빛은 내면을 향한 메아리가 된 채 불성(佛性)의 씨앗이 움트이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원의 자내증적 성격, 그 속에 시지프스(Sisyphos)의 실존적 부조리(不條理)와 그에 대한 연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원의 열쇠 손에 쥔 채 그 문 열어 제치려는 나의 노력이 존재해야 할 뿐… 좁은문 열고자 하는 노력, 그 속에서 지드(A. Gide)의 ‘지상의 양식’을 얻기도 할 것인 바, 이는 내면의 깨달음을 위한 한 발자국이 되어질 것이다.


[불교신문 2508호/ 3월14일자]

2009-03-10 오후 10:12:51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