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베이컨(F. Bacon)은 인간 지성이 진리에 나아감을 방해하는 네 가지 우상(Idola)을 논한 바 있다. 무리중심적 사고로 인한 종족의 우상, 편견에 의한 동굴의 우상, 언어의 오용에 의한 시장의 우상, 권위·철학설의 미혹으로 인한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일상의 삶 가운데 종종 우리는 이 같은 우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사회 특정 집단에 속한 채, 집단적 도그마로 인한 풍설 속에 종족과 동굴에 갇히며, 권위.철학설에 갇히는 경우가 있다.

 

근래 극과 극을 치닫는 보수·진보의 미디어 논조를 접하며, 다수의 대중은 시대의 보편원리와 양심의 명령 간의 괴리감이 형성되고 있다. 소위 가치관의 혼란 속에 필자 스스로도 우상의 동굴, 극장의 우상에 빠져드는 느낌을 갖는다.

 

칸트(I. Kant)는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법(定言命法)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요즘 보편원리는 시류에 따른 상황윤리의 전개 속에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 칸트가 정언명법의 당위에 대한 도덕성과 그에 따른 신(神)의 요청을 행했다면, 불교인의 당위성은 다르마(Dharma)를 통한 변혁 속에 존재한다.

 

사냥꾼에 쫓기는 노루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하는 ‘윤리의 목적론적 정지’ 속에, 목적을 위한 수단을 수단을 위한 목적으로 혼동하는 세태 속에, 지범개차(持犯開遮)의 원리부정 내지 악법 쇠퇴를 위한 지범개차가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앙굴리라마의 살인 역시 도(道)를 위한 윤리적 자기부정이라 치부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도를 위한 윤리적 자기부정이 우리에게 강요되는 때, 헤겔(F. Hegel)은 “철학이 이성의 회색에서 그 회색을 더해갈 때”를 인지한 채 시대적 우려를 전한 바 있다. 또한 “그럼에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하여 철학에 대한 자기규정을 부여했던 한편, 절대정신으로서 세계정신의 등장을 고대하기도 하였다.

 

요즘 시대적 우려 속에 자기몰락의 길을 걷는 때,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하는 시대의 인식자로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되어 시대정신의 발흥을 지켜보아야 함은 우리 불교 수행자의 자각을 일깨워 주는 측면이라 하겠다.

  

[불교신문 2536호/ 2009년 6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