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논설위원ㆍ고양 원각사 주지
기독교 혁신 신학자 불트만(R. Bultmann)이 주장한 ‘비신화화(非神話化)’ 관념은 ‘신(神) 중심주의’를 탈피하고 있다. 인간 중심주의 이론으로서 제2의 인본주의, 르네상스를 예기케 하는 발상일 지라도, 그럼에도 그곳에는 성서 특유의 ‘인간 중심주의’가 내재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교는 시작으로부터 신 중심의 바라문적 견해를 떠난 연기적 세계관과 만유불성(萬有佛性)을 전제한 채 성서적 인본주의(人本主義) 마저 뛰어서고 있다. 한편 불교는 힌두교적 제식주의(祭式主義) 또한 넘어서는 원리를 전하고 있다.
십여년 전 휴암스님은 “자신이 주인이면서 왜 하느님 같은 불보살(佛菩薩)로 먹고 살려하나? 왜 자신이 일체의 주인이라면서 화복(禍福)의 노예가 되는 진리를 앞장서서 전파할까?”라는 의구심을 표현하는 가운데 “방편을 버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아치라바티 강이 범람하고 있을 때 강 건너 볼일이 있는 사람이 ‘그쪽 기슭이 이쪽으로 와 주시오’라고 기도하며, 그 기원에 의해 저쪽 기슭이 이쪽으로 올 것으로 생각합니까?” 하여 스스로의 행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대승의 감상적 신관(神觀)은 자칫 불교를 유신론적 실체로 변혁시킬 위험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교 내세적 상징으로써 미륵사상의 구조를 살펴볼 때 그 안에는 성(聖)과 속(俗)의 만남을 통한 성불 가능성이 내재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미륵하생(彌勒下生)의 속화(俗化)에서 상생(上生)의 성화(聖化)를 통한 깨달음의 방식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흡사 아가페와 에로스의 만남의 장(場) 가운데 종교의 본질이 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구원(救援) 아닌 우리 내면의 상승적 노력이 기술되고 있다.
형이상학의 목적은 세계의 시초를 설명하는 일이고, 다르마의 목적은 세계의 개혁에 있다. 칸트(Kant)가 당위(當爲)에 대한 도덕성과 그에 따른 신(神)의 요청을 행하였다면, 불교인에게 있어 당위성은 다르마를 통한 자신의 변혁 속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 이후 다수의 불보살의 의지에 우리의 화복을 맡겨버리는 오류 속에서 우리는 자칫 저급한 칸트류의 격률(格率)과 요청(要請)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불교신문 2543호/ 2009년 7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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