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寺)에는 당간(幢竿)이 있다. 당간은 범어 lakṣatā의 번역어로 찰(刹)이라 표기된다. 당간, 찰간(刹竿)에 깃발 휘날리는 곳, 그곳 사찰(寺刹) 또는 범찰(梵刹)에서 우리는 깃발 펄럭이는지 내 마음 펄럭이는지를 논한다.

 

범어 lakṣatā는 탑의 중심을 뜻하여 찰주(刹柱)라 표현한다. 이는 탑의 중심뿐만이 아닌 우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신성한 그곳은 소도(蘇塗)라 불리며 솟대가 세워진다. 그곳에 머무는 자들, 한 마리 청둥오리 되어 진계(眞界)와 속계(俗界)의 전령(傳令)이 된다.

 

지금 절에는 당간이 없다. 내 마음 펄럭이는지 바라볼 깃발도 매달리지 않는다. 진속(眞俗)을 오가는 전령, 청둥오리도 살지 않는다. 寺는 있되 刹은 존재치 않는다.

 

현시대의 길목에서 명동성당은 종교성의 중심지, 소도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1994년 종단개혁 이전에는) 조계사에 이념의 반아(反兒)들이 거처를 마련하면 냉대를 받았으며, 승단(僧團)은 과거 사회적 양심의 고백성사(告白聖事)에 대한 묵비권(權)을 행사하지 못했다.

 

종교의 성지, 소도는 세속법의 완충지대다. 인간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신적(神的) 기운이 서려진 성스런 땅. 그럼에도 그곳은 승려들만이 아닌 민중들에 의해 전승된 무형적 자산의 보고(寶庫)이다.

 

소도는 세속을 떠난 속리(俗離)의 은둔주의적 상황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적정처(寂靜處), 아란야(阿蘭若) 가운데 존재한다. 아란야의 수도승이 왜 소방울 소리 들리는 곳,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자리했는가? 이는 민중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장소요, 탁발을 통해 이집 저집을 기웃거려 민중의 생활을 탐색한 채, 이념적으로나마 그들과 빈부를 같이하는 곳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역사성(歷史性) 확립의 장소인 것이다.

 

지금 절에는 당간이 없다. 솟대 없는 소도(蘇途)가 있는가? 그렇다면 솟대는 어디 있는가? 아마도 그것은 만행(萬行)을 떠나는 운수(雲水)의 발자국 속에서 발견될 것으로, 바로 그곳에 刹이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 2550호/ 2009년 8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