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원각사 주지

  I.
  생활의 많은 지혜를 찾으려 했었고, 그래서 또한 실없는 번민과 함께 침몰하기도 하였다.  한때는 격렬해지고 또다시 사그라져야 하는 날들의 지나감에 모든 게 허망하기조차 하였다.  그리하여 무수히 자신을 반역하고, 또다시 반역하고 자꾸자꾸 재주넘기를 계속하는 재주꾼이 되어 왔었다.  그러나 가끔의 평정함 가운데 발견되었던 것은 자신을 억제하고, 스스로의 입에 재갈을 물리어 양순해지라는 명령뿐이었다.
  이해의 측면에서 요구되었던 것은 또 하나의 요구, 곧 '생활'을 말해 주었다.  생활을 위한 단순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는 것, 생활이란 의미 앞에 모든 것들은 자연스러이 소멸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니 스스로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하여 생활을 살아도 보았지만, 무척이나 힘이 들음을 알기도 하였다.  그것은 너무도 많은 내적 희생을 요구하였고, 아집에 찬 나는 나를 나누어 줄 만큼 부유한 자이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영원한 구도자(求道者)로서의 자신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삶을 살아가는 농부의 단순한 행복을 깨닫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사슬의 연쇄 속에서 무한한 이해의 눈을 찾기 위해 당분간의 유예를 지난, 영원한 구도자를 생각할 수 있기 바랬었다.  그러나 얼마나 희망을 원해야 비둘기가 되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고독함 가운데 피어나는 한 마리 새, 그래서 시인(詩人)이고자 원했다.  그러나 의미의 혼란 속에서 그리고 항시 자신을 채찍질해야만 하는 속에, 끝없는 내면의 자유를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는 가난한 마음에 시(詩)가 탄생될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함 속에서조차 나의 자유(自由)를 향하려는 노력은 쉬이 없어지지 않은 채, 그만큼의 길(道)들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임을 생각하곤 하였다.

  II.
  햇살 비춰오는 날, 나는 또한 생각하였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평생 처음으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루쿠제(H. Marcuse)의 말을 되뇌기도 하였다.  그리고 생활의 의미를 배우며 삶을 위한 단순의 의미를 배워간 채, 또다시 생(生)의 열외자인 자신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삶이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라는 지드(A. Gide)의 말의 의미였던가?  그래서 재주넘기를 계속하고 또다시 계속해야 했던 날, 얼마나 희망을 원해야 비둘기가 되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클로텔(J. Cloter)에 대해 당분간의 의견을 같이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만족을 방해했던 무서운 불안, 쾌락으로 절망으로 이끌었던 줄기찬 불안들.  그래서 나는 서적 속으로 찾아 헤매었다.  확실한 것은 나를 기쁘게 하였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의 불안은 나에게 경고하였다.  정지하지 말고 만족하지 말고, 사랑에 번민하고 고통構?또다시 찾아 허덕이라고 말해왔던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끝끝내 찾아 나서야 할 것임을 강조하곤 하였다.
  그러나 삶이란 또다시 단순해짐을 원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나의 운명만큼의 슬픔을 배우고자 원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말한다는 것은 크나큰 공허를 안겨줄 뿐, 내면의 고독만을 일깨워 주기도 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알았다.  삶이란 결코 변화 속에 머물게 될 부동(不動)의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변화와 불변(不變) 어우러지는 총체적 질서 가운데 역동적 삶의 그림자 내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몽상하곤 하였다.  하늘에 떠있는 조각배를, 그 구름 타고 노니는 생육간의 처절한 질서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III.
  삶이 삶을 이끌어 온다면, 구름은 청천하늘 떠돌 것이었다.  하늘에 구름 가득하다면 이 땅엔 맑음만 있고, 흐르는 물[水] 파랑 가득하여도 세 번째 비둘기는 여전히 파란 잎사귀 물어와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 땅에 평화가 있다면 여전히 흰 구름 노닐고, 태초의 동산엔 연인들 모여 사랑의 노래 불러댈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
  아 이제 초봄, 구름 덮인 스산한 날씨엔 바람 불고, 산밑 피어오른 풀잎을 슬어내려도 괜찮을 것이다.  아스라이 내려쬐는 따스한 햇살 위에 날다람쥐 옹기종기 모여 도토리며 꿀밤을 까먹으면, 어디선가 문득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두 귀 쫑긋 세우는 그곳에도 한껏 평화로움 잠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