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원각사 주지

  I. 농부의 행복을 찾아서
  유월이 가고 칠월이 찾아오면 산사(山寺)에는 온통 무성한 신록 우거진다.  이따금 해질녘의 한적한 오솔길 따라 산길을 걷노라면 지는 태양 아쉬워 매미의 울음소리며, 신선한 저녁 바람맞아 철 이른 귀뚜라미 소리 어우러지기도 한다.
  해질녘 산사(山寺)는 아름답다.  황혼 빛 여울어 가는 길 녘에 서서 그 무지개 햇빛 받아 아스라이 반짝이는 나뭇잎이며, 요란스럽지 않게끔 흐르는 냇물.  그리고 멀리 마을에서 한줄기 밥짓는 연기 피어오르면 그 느낌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이윽고 잠시 저 멀리쯤에서는 둔탁한 떨렁거림, 소 방울 소리 들려오기도 한다.  농사일 마친 농부의 하루해 귀가 길.  힘없이 덜퍽거리는 소걸음만큼이나 농부의 얼굴에 피곤함 찾아들어도 그는 결코 불행을 운운하지 않는다.  그러한 그의 걸음에 힘겨운 삶의 무게가 한껏 지워져 있다 하여도,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사에 대한 불평이거나 주위 가족들에 대한 미움 또한 생겨나지 않는다.
  '그대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고 푸쉬킨은 말하였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 농부의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II.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에의 성찰
  행복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산 넘고 또 산너머 행복 구하는 뭇 사람들의 행복 추구에 칼 붓세는 '그 자리에서의 행복'을 말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의 행복.  현재 조건 지워진 삶의 양태들 속에 우리들 행복의 씨앗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하여 허공 속에서 삶을 구하고, 흰 구름 뭉게구름 속의 상상을 되뇌기도 한다.  물론 꿈을 먹고 사는 인간들에게 줄기찬 상상의 나래는 이후 가능성의 빛을 줄 수 있다지만, 그러한 상상 속에서 우리의 현실적 기반은 얼마만큼이나 상실해 갈 것인가.
  옛날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을 우리는 기억한다.  금단의 열매, 빨간 사과를 따먹고 난 아담에게 하느님께서 묻는다.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그때 이미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부끄러움을 알아차린 아담은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운 채 황급히 대답한다.  "Adsum   ".  "지금, 여기 있습니다"라는 히브리어 식의 표현이다.  그리고 무심결에 그 말을 내뱉은 아담은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직시하게 된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버린 자신의 현 상황을      그리고 그 속에서 아담은 '인간 실존의 공포'를 느낀다.  '존재의 두려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걸쳐 그 영향력을 한껏 행사했던 실존철학(實存哲學)도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라는 라틴어 식 표기를 종종 사용하곤 하였다.  특히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의미의 지평' 및 '역사', '역사성'의 개념을 추론하는 속에서 '인간 현재의 인식'을 무수히 요구하기도 하였는 바, 우리 인간에게 있어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라는 표현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인가?

  III. 현세 속에 행복이
  카톨릭의 구원론을 참조해 보면, '준 종말론(Semi-eschatology)'이란 표현이 있다.  현세의 삶 속에서 미래의 종말론적 평화를 예견한다는 것으로서, 불확실한 미래 종말론에 대한 수정적 원칙이다.  곧 현세의 인간,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실제적 개인'의 현실적 행위, 그 행위의 기쁨 속에 종말론적 평화며 천당, 극락세계를 찾을 수 있다는 매우 현실적인 이념 정립인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일회적 삶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외부의 상황들, 그 현재의 질서 속에서 평화를, 내면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 숙명(Fatum)적 인간에게 있어 '현실적 삶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적 성격'에의 구속을 풀어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은 자체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자체존재(Dasein)로서의 개인을 발견한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의 현재 속에는 이미 천국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우리에게 있어 행복이란 추구되어야 할 것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  작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펼쳐져 있는 많은 상황들, 그 상황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가는 속에서 우리는 참된 행복이며 내면의 평화 또한 얻어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적극적 사고이며,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현실 도전적인 면까지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우리는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기도 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얻으리니    "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 인간 실존의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온통 자신을 비워버린 그곳, 거기에서 또 다른 채워짐의 질서를 느끼게 될 것이다.  '빔'과 '참'.  그리하여 사람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비워진 마음은 또다시 채워질 것임을    

  IV. 실존적 인식에 직면하여
  비워지면 또다시 채워질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빔'이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자신 실존의 인식'이다.  자신 실존의 인식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나[我] 자신을 찾는 길이다.  
  나[我]란 무엇인가?  이 백 천 만 겁의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흩날림의 역행을 휘돌아 쳐 현재의 몸을 받아 사는 인간.  아, 그러나 나는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가냘픈 육신의 부조화로 형성된 병고에 절망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그러한 절망은 나의 육체뿐만이 아닌 정신마저도 쇠락시켜 가고 있다.  그리하여 온통 절망 속에 감싸인 채 우주의 한구석, 침대에 누워진 나[我].  이것이 과연 본유의 내 자신이란 말인가?

  V. 인연의 거짓화합을 찾는, 마음[心]
 
  "사람의 몸은 네 가지 원소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중 어느 한 원소가 조화를 잃어 백 한가지 병이 생기며, 네 가지 원소가 함께 조화를 잃으면 사 백 네 가지 병이 생기는 것이다."

  불교 경전 {오왕경(五王經)}에 나오는 말이다.  즉 우리를 구성하는 원소화합의 불균형 그것으로 인해 병이 생겨나며, 그 조건들이 없어지면 병 또한 없어진다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가는 것이라면, 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신체 구성요소의 불균형만이 있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어 생겨난다.  그러므로 그 원인이 제거되면 그에 따른 결과는 소멸된다.  만약에 우리에게 병의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의 원인을 추구해 들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 고통의 근원적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마음[心]이다.  안락한 마음에 그 어떤 고통 찾아들 수 있겠는가?

  "병의 일어난 곳을 알아서 그에 따라 약을 써야 한다.  병은 풍(風:호흡)으로 생기기도 하고, 열(熱)로서 생기기도 하고, 담(痰:점액질)으로 생기기도 하며, 음(　:신경병)으로 생기기도 하고, 또는 골절에서 생기기도 하며, 모든 것이 합해 생기기도 한다.  이런 병의 일어난 곳을 알아 거기 따라 약을 써 고쳐서 안락을 얻게 해 주어야 한다."
                                          - 경전 {의유경(醫喩經)}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