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의 정서

  정각스님 · 원각사 주지

  I.

  비 내리는 날 오후, 홀로 경춘선 열차의 강촌(江村) 역에 내려본 기억이 있는가? 그곳 강촌 역에 내려 홀로 하염없는 강물 바라보았던 사람, 지난날 다사로웠음 되새겨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인생의 고통을 안다. 또한 혜화동 길모퉁이 카페(Caf )를 배회하며 홀로 웃음 짓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

  '만남'은 이내 '헤어짐'으로 변해지고 마는 '만남의 법칙' 속에서, 결국 모든 게 부질없는 것이라는 엄숙한 삶의 이치를 통달해 버린 자(者). 그는 부재(不在)를 사랑한다. 그러한 그는 스스로의 눈[眼]의 침묵을 마주하며 하얀 날개 꿈꿀 것이지만, 이내 백야(白夜)의 고요만이 그의 상념 앞에 펼쳐지기도 할 것이다.

  II.

  그럼에도 끝없는 삶의 현실 속에 정주(定住)해야 만이 하는 애욕자(愛慾者). 언제나 패배가 약속된 삶의 상황을 긍정해 가는 속에서조차, 인간 스스로는 '프로메테우스적 삶'을 꿈꾼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희망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삶의 부조리(不條理)한 현실들. 그 끝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별리(別離) 속에 생겨나는 '가슴 아픔', 즉 고통을 불교에서는 애별리고(愛別離苦)라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만이 하는 고통이다. 사랑하는 것의 소멸과 죽음 앞에서, 그 사랑하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원하게 될 때 우리는 그를 말없이 떠나 보내야만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차라리 순수하다고 말해야 할까? 그럼에도 그 속에는 마음의 고통을 수반한 혼돈이 내재해 있다.

  III.

  그렇다면 그렇듯 마음의 고통은 왜 생겨나는가? 현전(現前)하는 다사로운 삶의 순간들에 인간은 영원성(永遠性)을 꿈꾸게 된다. 또한 그 영원성을 몽상하는 속에서 인간은 사랑의 병을 앓는다. 그것은 차라리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가 말했듯 '죽음에 이르는 병'과도 같다. 그리하여 인간은 삶의 순간(瞬間) 속에 영원(永遠)을 몽상할 것이지만, 이내 그의 마음은 '실존적 소외'의 그늘로 접어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것은 유한성(有限性)의 슬픔 때문만은 아니다. 그 근원은 집착(執着)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물을 나의 일부로서 파악코자 하는 나의 에고(Ego). 이것에 인간 슬픔의 근원이 있다. 사랑하던 그 무엇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끝없는 나의 집착. 이 속에 부조리(不條理)가 스며들며, 그 부조리 속에서 인간은 실존적 슬픔에 잠겨들게 되는 것이다.

  IV.

  그렇다면 어떻게 그 실존적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애초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는 경전 『아함경(阿含經)』의 말씀을 따라야 하기도 할 것인가? 그러나, 아니다. 그러한 식의 소극적 해결책이 아닌, 좀더 근본적 방안을 제시하는 불교의 진리가 있어 우리는 삼법인(三法印)의 원리를 들어 말할 수 있게 된다.

  삼법인(三法印)이란 불교 사상의 핵심인 연기(緣起)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모든 존재의 세 가지 속성, 곧 존재형식을 말한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및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내지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말하는 것으로, 일체의 모든 것은 변화의 흐름 속에 있어 항상(恒常)하는 것이 없으며, '나'라고 불리는 존재 또한 항구불변의 실체가 아닌 인연(因緣) 따라 생겨난 것. 그러므로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리고 연기(緣起)의 법칙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고요 속에 잠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필연성 아닌 인연의 끈에 의해 펼쳐지는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들 속에서, 그 만남과 헤어짐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V.

  그럼에도 나는 모든 이들의 삶에 위의 말들이 어떤 의미를 미칠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분명 삶에는 덮어두어야 할 그 무엇이 존재해 있으며, 개개의 인간만이 개개의 삶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그 의미성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