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자(者)에게 사랑을

                        정각스님 · 원각사 주지

  I. 죽음의 순례자와 더불어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哲學者)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맹목적 충동에 의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放浪者)에 불과하다는 고울드(Gould)의 말을 생각해 본다.  한편 삶의 여정(旅程)과 끝없는 행로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생활의 활력을 찾고자 할 것이겠지만, 며칠 전 갠지스강 지류에서 마주친 '죽음을 위한 순례자들'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아 네팔의 카투만두, 히말라야 기슭을 찾아 이제 인도에 접어든 오랜 기간의 행로(行路)는 다시금 나에게 위대한 삶의 몽상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할 것이겠는가? 

  II. 사념(思念)의 응시자인 그들은    

  인도인(印度人)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끝없는 몽상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무엇엔 가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시선 속에는 허공에 잠긴 영원(永遠)의 그림자 스며져 있을 것이며,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의 무한성 속에도 조차 일깨워지지 않을 위대한 사념(思念)을 응시한 채 언제나 자신 속으로 몰두해 있는 그들의 표정 속에는....

  아, 사념의 응시자는 사념의 끝에서 영원(永遠)의 그림자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음과 삶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죽음도 삶도 아닌 무한성의 시간을 살아가는 채 그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 것인가.  떠오르는 갠지스강 햇살에 하루는 오고, 갠지스강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봄 속에 하루가 간다.  그럼에도 영원(永遠)이 순간 속에 있다고 한들, 그 순간의 영원성을 살아가는 삶의 나그네를 쫓아 우리는 오늘도 무시간의 공간 속에서 무수히 발걸음을 재촉해 간다.

  아 내일이 오면 우리의 여정은, 그리고 우리의 사념(思念)은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III. 태양과 사랑의 사념(思念)들

  새벽이 오면 빛을 볼 것이라 사람들은 말했다.  아니, 새벽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리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의 끝에는 언제나 맑음만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까닭 없이 흐르는 것이라면 그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영육(靈肉)간의 처절한 질서, 그 순환의 영속성에 체념을 배워야도 하는가?  그렇다면 아, 차라리 우리에게 빛은 기대되지 않았어야 할 것일 런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꾸는가.  햇볕 따가운 날, 그렇듯 많은 빛의 노예들은 한적한 오후의 그늘을 피해 뜨거운 태양 밑에 모여들곤 하였으니 말이다.  강렬한 태양 밑, 그리고 그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꿈일런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사랑은 곧바로 죽음을 위한 몸부림일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사랑은 진리를 위한 위대한 투쟁이 되어질 것이기도 하다.

  아, 사랑의 길에서 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유한성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은 또 다른 삶의 Ｒ력?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할 것인가?  아 무한성(無限性)의 염원(念願)들, 그리고 그 꿈과 몽상.  그 무한성의 지표(地表)에 서면 인간은 내면의 무한한 근원을 헤메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듯 퇴색된 일상성의 그늘을 떠나 곧바로 뜨거운 태양을 향해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곧 사랑의 표식이며, 진리(眞理)를 위한 아름다운 꿈이기도 할 것이기에....

  IV. 영원성의 틈새를 꿈꾸며

  진리를 위한 아름다운 꿈.  아, 그럼에도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길에서 사랑을 배우고자 헤메이는 삶의 나그네에게 영원(永遠)은 그 무한성의 틈새를 드러내 보일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죽음의 순간과도 같이 우리에게 삶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란 것을....  그리하여 차라리 우리는 '순간 속의 체념'을 배워 나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한때는 순간(瞬間)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고, 순간의 꿈속에 꾸었던 삶의 몽상을 지워버리는 일도 있게 된다.  아니, 지워버리고자 굳이 애써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언제나 삶이란 꿈의 단절, 죽음과 더불어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유한성(有限性)의 뒷켠에서 무한성(無限性)의 틈새를 엿본다는 것은 '[절망]이란 치유될 수 없는 병(病)'에로 우리를 이끌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 한낮의 고요 속에서 언제나 나는 나의 그림자처럼 나를 따르는 죽음을 본다.  그 죽음의 그림자는 언제나 나의 왼쪽 뒷켠에 선 채 말없이 나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 어느 순간(瞬間)이 다가오리란 것을 기약하면서....

  아, 그럼에도 영원성의 틈새를 엿본 인간에게 유한(有限)의 슬픔은 배가(倍加)된다.  그러한 그는 슬픔에 잠긴다.  그러나 끝없는 슬픔이 인간의 숙명이 아닌 한에 있어 인간은 또 다른 우회로를 만들어 갖는다.  

  사실 죽음이란 언제나 우리에게 영원한 패배를 안겨다 준다.  그러나 또 다른 길에 선 인간은 패배보다는 승리를 꿈꾼다.  또 다른 승리에의 꿈은 무엇인가.  그렇다.  내면의 무한한 근원을 헤메이는 일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끊임없이 내면에 침잠하는 일이란 밖을 향한 크나큰 용솟음이란 사실을.  그리하여 우리는 고요 속에 잠긴다.  고요 속에 내가 있다.  고요 속에 나와 남의, 나와 우주의 참된 만남이 있고, 참된 만남으로 인하여 우리는 진정 무한성의 틈새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V. 영혼은 사막에서 노래하는가!

  우리는 또다시 생각할 수 있다.  우리에게 '삶이란 영속성의 수레바퀴'인 것을      그리고 그 끝없는 순환의 영속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임 또한 말이다.

  영적(靈的) 진화의 질서.  사실 끝없는 영혼의 여정 속에서 영혼 스스로는 '육체라 불리는 옷'을 무수히 갈아입게 된다.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해 언제나 스스로를 육체에 붙박혀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는 언제나 도구로서 활용된다.  영혼 활동의 장(場)인 것이며, 영혼 활동의 도구로서 자신 역할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가.  언제나 살아있는 생체(生體)는 육체에 붙박힌 영혼이며, 영혼에 지배받는 육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우리는 알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많은 선지자(先知者)들도 이렇듯 알아왔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우리의 영혼은 끝없는 자유의 정신 지닐 것이지만, 자유의 정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 '육체라 불리는 감옥'에 수감된 채 스스로의 유예기간을 설정해 지내고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들 삶의 여정은 사막에서의 머나먼 여행일런지도 모른다.  그러한 삶의 여행자.  그는 그 사막의 여행길에서 지혜로운 늙은 새 한 쌍이 둥우리 친 오직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날 것인가?  한껏 지혜의 샘물을 마신 늙은 한 마리의 뱀을 사막의 오아시스, 그 커다란 바위 뒷켠에서 만나기도 할 것인가?  그러면 그의 영혼에 나이팅게일, 불사조(不死鳥)의 노래 소리 들려오기도 할 것인가?

  아, 테판다르 사막이 있는 나라 인도에서 무한성을 향한 현재의 나그네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흐르는 꽃을 말해야 하는가?  흐름을 흘러가는 꽃을 노래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 송이의 장미를!  그러나 사막의 여행자는 그 막막한 사막 가운데서 아직 어떤 나무도, 뱀도 만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의 노래는 언제 시작될 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그때에는 크나큰 비가 한껏 뿌려질 것인지도....  모른다.

  VI. 사족

  45도의 더위, 그리고 모기.  자칫 눈물이 나올 것만도 같은 견디기 어려운 열기 속에 너무도 한국이 그리워진다.  언젠가는 차가운 얼음물에 몸을 한번 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다섯 잔의 냉커피를 한몫에 마셔버리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또다시 한밤중의 무더위 속에 잠에서 깨면 간혹 환한 달[月]과 개 짖는 소리 들릴 뿐, 시원한 바람은 불지 않는다.

                                    인도의 바이샤카月(2월) 보름날,
                                       석존 탄생일. '91. 5. 28일.
                                              Varanasi에서  正覺.  

1991년 월간지 <현대불교>에 실었던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