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습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
        어색한 몸짓이란 결국 더 이상의 답변을 
        간직할 것이 아니기에 

  I. 초여름의 기운 찾아들어
  벌써 초여름의 기운이 산사(山寺)에 찾아들고 있다. 반쯤은 열려진 채, 그 문지방을 통해 내다보이는 오래된 황토 빛 담장들과 담쟁이들. 사찰 외관의 단청들 사이를 날고 있는 참새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아 여름이 찾아들고 있다.

  이렇듯 온통 푸르름에 투영되는 한낮의 그늘들, 그곳에 산이 있다. 물줄기 흐름이 있다. 그곳에 바람이 있다. 무더운 한낮의 피곤을 씻어주는.... 그러나 그늘 속의 상념에서조차 그늘 저편의 황토 흙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황토 흙의 담장들. 그리고 황토 흙의 대지, 수레바퀴 자욱들 어우러진 황톳길을....    

  아, 무더운 초여름 7월에 접어들어도 우리는 6월의 대지를 생각해야 한다. 황토 흙 생명력 곳곳에 깃들인 기나긴 내면의 생명을 벅차오는 가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II. 시원한 바람 속의 상념들
  산이 있다. 바람이 있다. 그리고 흐르는 물소리며 바람소리....    

  그러나 산에 사는 나에게도 역사가 있다. 어제를 살아왔던 나이기에, 또 다시 내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더불어 사는 삶 속에 나의 고독한 길이 있는 것이기에....    

  그러면 진정 역사와 더블은 고독이란 무엇인가. 아, 나에게 있어서 역사성(歷史性)이란 어떻게 서술되어야 하겠는가. 역사와 역사성, 그리고 나의 고독. 이처럼 대낮의 상념은 또 다시 의문을 남긴다, 나의 물음표 상자에 저장된다. 지금, 아 시원한 바람 불어 땀을 식혀 준다. 그럼에도 나는 뮈르달과 같은 슬픈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 된다.

  III. 삼복 더위 속에서
  많은 상념들 얽혀지는 무더운 여름.  어느덧 소서(小署)에 접어들면 징검다리 건너 나무 밑 시원한 그늘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리고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근다. 퐁당퐁당.... 서너 개의 돌멩이를 던져 보기도 한다지만, 동그랗게 흩어져간 물결의 흐름은 또 다시 고요를 이룰 뿐이다.

  이제, 절기상 하지(夏至)가 지난 후 세 번째 맞이하는 경일(庚日)은 초복(初伏)에 해당된다. 그리고 10일이 지나 네 번째 경일(庚日)에는 중복이 찾아들고, 또 다시 입추(立秋) 지난 첫 번째 경일이면 말복이 찾아온다.

  삼복(三伏) 더위. 태양 볕이 황도대를 가로질러 우리의 정신조차 마비시키듯 똑바로 내려 쪼이는 때, 저녁나절 기승을 부렸던 열기 잠시 가라앉은 초저녁이면 낮 더위에 충열된 눈으로 어른들은 마당가 웅크리고 앉은 삽살개를 바라본다.

  보신탕. 한바탕의 유혹과 갈등이 내면에서 솟구친다. 이윽고 바둑이에 대한 연민조차 물리친 채 어른들은 장작을 모은다. 바둑이 다리를 거꾸로 묶고 매달아서 몽둥이를 준비한다. 개를 잡을 때는 '몽둥이로 개 패듯 패야 고기 맛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녁노을에 얹혀 털 그을리는 냄새 마당 곳곳에 퍼진다.

  IV. 보신탕 소고(小考)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보신탕을 꽤 즐겨왔다. 이에 {동국세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개장'이라 한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국'에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서 시절 음식으로 만든다. 그렇게 하여 땀을 흘리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것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이것을 많이 판다."

  복날과 '개장(보신탕)'. 이것은 불가분의 함수관계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부녀자들은 쇠고기를 대신해 '육개장'을 끓여 먹고, 그것도 비위에 거슬리면 햇병아리며 인삼 대추 찹쌀 등을 넣어 '삼계탕'을 끓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처럼 전통적 복날 음식인 '개장(보신탕)'을 기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윤회의 질서에 있어 개에 대한 배려적 측면이 아니었나 싶다.

  흔히, '개고기를 먹고 절에 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주(趙州) 스님은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고 하였다. 한편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한 노인이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넣고서 자장(慈藏) 법사를 찾아 석남원(石南院)을 방문한 바 있었는데 자장 법사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여 상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그 노인이 "돌아가겠다.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랴" 하면서 삼태기 속의 죽은 강아지를 땅에 던지니 강아지는 금빛 찬란한 사자좌(獅子座)로 변하고 노인은 문수보살로 화현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이렇듯 개에 얽힌 이야기가 불가(佛家)에 널리 퍼져 있음은 어떤 까닭인가.

  V. {목련경} 이야기
  {목련경(目蓮經)}에 의하면, 한때 목건련(目健蓮) 존자가 여섯 신통을 얻고서 돌아가신 부모를 제도코자 도안(道眼)으로 세간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그의 죽은 어머니는 아귀(餓鬼)에 태어나 음식을 맛보지도 못한 채 피골이 상접하여 있었다. 이에 목건련 존자는 아귀도(餓鬼道)에 빠진 그의 어머니를 구제코자 인간으로 환생시킬 즈음에, 어머니의 혼(魂)에 개의 몸을 받게 한 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였다고 말한다.

  이렇듯 개의 몸을 받은 후 사람이 된다는 것. 이런 이유에서 불가(佛家)에서는 개와 사람을 거의 동일시했으며, 또한 현생(現生)의 개는 다생(多生) 이전의 부모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개를 먹음은 자기 부모를 해롭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주 스님은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고 하였을까?

  여하튼 불가에서는 복날이 되면 개장 대신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었다. 또한 콩죽을 쑤어 역질을 물리친다고도 하였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다생 이전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위해 이제 우란분일(盂蘭盆日), 백중(白衆)날이 되면 절을 찾아 오곡(五穀)과 향화(香華)를 공양(供養)하리란 생각도 하였다.

  VI. 남은 이야기
  이렇듯 삼복의 무더위와 함께 남녘에서는 습기찬 바람 불어오는 때, 이처럼의 무더위를 [농가월령가]는 말한다. "6월은 계하(季夏) 되니 소서(小署), 대서(大暑) 절기로다"라고....    

  이제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낸 농가에서는 김매기를 실시한다. 잡초를 뽑고 피를 뽑는다. 그리고 오후 녘이면 한가한 때, 주변 원두막에 오른 시골 사람들은 수박이며 참외를 따먹는다. 이제 일 마친 농부는 저녁 석양노을에 이르도록 시원한 원두막에 누워 팔베개하고 한숨 푹 자도 좋다. 더 이상의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없는 아이들만은 더욱 바쁘다. 개울가 저만치 건너 뜨거운 햇볕에 몸 그을리며 멱감는 아이들. 또한 두 손에 손 그물을 든 아이는 개울가 고기를 쫓기도 한다. 몇 마리쯤의 고기를 손에 잡아든 아이는 기쁘다. 하얀 이 활짝 드러낸 채 웃던 아이의 마음에는 잡은 고기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다. 무소득(無所得)의 마음.... 천렵(川獵)해서 잡은 고기며 가재를 조심스레 바위 밑에 놓아주는 아이의 마음에는 평화가 생겨난다.

  더 이상의 목적 없는 유희(遊戱). 악의(惡意)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이의 눈망울에는 또 다시 하나의 생각이 아른거린다. 아마도 오늘 저녁 풀벌레 우는 시간이면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원두막 서리를 행할 것이다. 자기 머리보다도 큼지막한 수박 한 아름씩 안은 아이들 가슴에 즐거움 피어오를 밤. 이렇듯 시골의 밤은 깊어갈 것이다. 마당 앞 모깃불 피어오르듯 우리의 오랜 꿈, 한 줄기 연기되어 흐르리라. 우리의 인생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