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성총(栢庵性聰)
                                        - 삼문수업(三門修業)의 형성에 기여 -

                                                   정각스님

  1. 시대적 배경

  백암성총(栢庵性聰:1631∼1700)은 조선 인조 9년에 태어나 숙종 26년에 입적하였으며, 그가 주로 활동하였던 시기는 조선 현종(顯宗) 후반부로부터 숙종(肅宗) 년간에 해당된다.

  당시 사회사적 측면에서 볼 때 그 시기는 앞서 선조(宣祖) 당시 왜(倭)의 침략에 대한 청허휴정 및 사명유정, 그리고 광해군(光海君) 년간의 청(淸)의 침입에 대한 부휴선수와 인조(仁祖)대의 벽암각성 등 승군(僧軍)의 활약상으로 인해 다소 승려의 사회적 위상이 부각되었던 시기를 지난, 그 후광이 침몰해 가던 무렵 폐불(廢佛)의 시기에 해당된다.

  또한 정치사적 측면에서 그 시기는 청(淸)의 억압과 당쟁(黨爭)의 흉폐, 그리고 극심한 재해로 인한 기근과 질병으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에 많은 양민들은 현종(顯宗) 당시 여러 차례 승니(僧尼)들을 강제로 환속케 하였던 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역 등을 피해 산중에 들어가 승려가 되기도 하였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장길산 사건」으로 대표되는 미륵신앙과의 관련 속에 사회 반역 세력으로 성장해 가기도 하였다.

  한편 승단사적(僧團史的) 측면에서 볼 때 그 당시는 세종 6년(1424) 선교양종(禪敎兩宗)의 통합 이후 청허휴정이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직위를 수임(1556)한 이래 교종의 전통이 선종에 통합 흡수되어갔던 시기로, 법맥 자체는 선종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회 숭유배불(崇儒排佛)의 틈에서 살아 남기 위한, 불교의 내적 정체성을 밝히고자 함허득통의 『현정론(顯正論)』 및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 등의 저술과 함께 선문 수행[禪修]의 원리를 규명하는 청허휴정의 『선가귀감(禪家龜鑑)』 등의 저술을 통해 이후 「원돈문(圓頓門)」과 「경절문(徑截門)」, 「염불문(念佛門)」 등으로 설명되는 삼문(三門) 수행의 교학적 원리를 제공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백암성총은 화엄(華嚴) 중심 교학인 「원돈문」에 대한 보족(補足)으로서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과 『청량화엄소초(淸凉華嚴疏　)』 및, 선지(禪旨) 참구의 「경절문」에 대한 『치문경훈주(緇門警訓註)』, 그리고 정토(淨土) 수업의 「염불문」에 대한 『백암정토찬』 내지 『정토보서(淨土寶書)』 등의 간행을 통해 삼문수업(三門修業) 기틀 형성에 기여했으며, 그와 관련된 수많은 불전(佛典) 간행에 힘쓴 홍법(弘法)의 종장(宗匠)으로서 당시 불교의 정체성 정립에 기여한 인물이었음을 말할 수 있다.

  2. 백암성총의 생애

  백암성총의 생애는 『동사열전(東師列傳)』 및 현재 송광사에 소재해 있는 「백암대선사비명(栢庵大禪師碑銘:『조선불교통사(상)』에 기재)」, 그리고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하)』 기사 등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위 기록들에 의하면 백암의 법휘(法諱)는 성총(性聰)으로, 성(姓)은 이씨이며 남원 사람이다. 고려 안호부원군의 10세손으로 아버지의 휘(諱)는 강(　)이고 어머니는 하씨(河氏)이다.

  숭정(崇禎) 신미(辛未)년인 인조 9년(1631) 11월 1일에 출생하여 13세에 순창의 취암사(鷲岩寺)에 출가, 16세에 법계(法戒)를 받았다. 18세에 방장산(方丈山:지리산)에 들어가 취미대사(翠微大師)로부터 9년간 수학하고 그 법을 전수 받았으며, 27세에는 곡성에 있는 신덕왕후 강씨의 원당(願堂) 신덕암(神德庵)에 거주, 30세에 이르러서는 명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이후 승주 송광사와 낙안 징광사(澄光寺), 하동 쌍계사 등의 사찰에 두루 거주하며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이때 『치문경훈주(緇門警訓註)』(3권)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외전(外典) 뿐만 아니라 시(詩)에도 뛰어나 당시 유명한 사대부였던 김문곡(金文谷) 및 정동명(鄭東溟)·남일곡(南壹谷)·오서파(吳西坡) 등과 교류하였으며, 이들 모두를 공문(空門)의 벗으로 받아들였다.

  숙종 7년(1681), 백암성총이 50살이 되었을 때 임자도(荏子島)에 표류 중이던 큰배가 정박하였다. 그 배에는 명(明)의 평림엽(平林葉:『동사열전』에는 葉平林으로 기록) 거사가 교열 간행한 『화엄경소초(華嚴經疏　)』 외에 『대명법수(大明法數)』, 『화엄경회현기(華嚴經會玄記)』, 『금강경기(金剛經記)』, 『기신론기(起信論記)』 등 4명 대사의 기록들과 함께 『정토보서(淨土寶書)』 등 190권의 책이 실려 있었다.

  이에 그는 『해동신각청량화엄소초(海東新刻淸凉華嚴疏　)』 「후서(後序)」 가운데 "지난번 대장경을 실은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우리나라 해변에 정박하였다. 그 배 안에는 명나라 평림엽 거사가 교감하여 간행한 (화엄경소초) 80권 전부가 있었는데 다행스러이 그것을 모두 입수할 수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 바, 경이로운 마음에 제자들과 함께 신심을 내어 모든 경(經)을 간행, 수년 내에 세상에 내놓았다. 「백암대선사비명(栢庵大禪師碑銘)」의 음기(陰記) 기록에 의하면 경(經)이 표류하여 도착했을 때부터 숙종 21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쳐 5,000개의 판목에 이를 새겨 간행하고 징광사와 쌍계사에 이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숙종 18 년(1692) 봄 61세의 나이로 선암사 창파각(滄波閣)에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베풀자 제방의 학자들이 몰려 왔으며, 그해 겨울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숙종 26년(1700) 쌍계사 신흥암에서 7월 25일 밤 자정 무렵 열반에 들었다.

  백암이 열반에 든 뒤 연일 밤마다 상서로운 빛이 감돌더니, 7일째 되는 날 밤 다비식을 행할 때 그 빛이 확대되어 한줄기 빛이 남북에 뻗치었다고 한다. 그리고 3일이 지나 유골을 거둘 때 솔가지 위에서 두 조각 영골(靈骨)을 수습해 송광사와 칠불사 등에 나누어 탑을 세우고 봉안하였다는 것이다.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 의할 것 같으면 고려말 석존의 38대 적손인 임제(臨濟)의 법을 이은 태고보우(太古普愚) 이래, 법맥은 환암혼수(幻庵混修)·구곡각운(龜谷覺雲)·벽계정심(碧溪正心)·벽송지엄(碧松智嚴) 및 조선 중기의 부용영관(芙蓉靈觀)을 거쳐 그 문하인 청허휴정과 부휴선수(浮休善修) 등 두 인물에 이르러 한국불교의 양대산맥을 형성케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청허휴정의 법맥은 사명유정(四溟惟政)과 편양언기(鞭羊彦機)·소요태능(逍遙太能)·정관일선(靜觀一禪) 등 4파로 나뉘며, 부휴선수의 법맥은 7파로 나뉘나 그 가운데 부휴선수로부터 벽암각성(碧巖覺性)→취미수초(翠微守初)→백암성총(栢庵性聰)→무용수연(無用秀演)→영해약탄(影海若坦)→풍암세찰(楓巖世察)→묵암최눌(默庵最訥)로 이어지는 맥락은 호남의 대표적 선가(禪家)로 자리 매김을 하였는 바, 백암은 부휴선수의 정통 계보로서 태고보우의 법을 이은 9대손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3. 백암성총의 저술

  백암성총은 그의 생애 가운데 많은 저술을 남겼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동사열전』에 의하면 "백암이 남긴 원고는 수십 편에 달하는데 거의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겨우 몇 편을 찾아 상재하매 최상국(崔相國)이 서문을 지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그의 저술로는 사집(私集) 2권, 경서(經序) 9수, 『정토찬백영(淨土讚百詠)』 및 『백암집』 2권이 전한다"고 하는데, [한국불교전서] 가운데 『백암집(栢庵集)(2권)』 및 『정토보서(1권)』,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4권)』, 『치문경훈주(3권)』,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4권)』 등 그의 찬집 및 주석서 등이 실려있기도 하다.

  4. 그의 사상과 불교사적 위치

  그의 저술을 사상적으로 분류해 보면 화엄 및 정토사상과의 관련으로서 이를 양분할 수 있다.

  화엄사상과 관련해서는 그가 "선암사에서 '화엄대회'를 베풀자 제방의 학자들이 몰려 왔다"는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그는 화엄학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의 저술 가운데「해동신각청량화엄소초후서(海東新刻淸凉華嚴疏　後序)」 내지 「서각화엄현담연의회현기(敍刻華嚴玄譚演義會玄記)」 등과 함께, 현존하는 그의 찬집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은 당(唐)나라 현수법장(賢首法藏)의 소(疏)에 대한 규봉종밀(圭峰宗密)의 주(注)와 함께 실려진 송(宋)나라 장수법사(長水法師) 자선(子璿)의 기(記)의 내용을 회편(會編)하고 있음을 볼 때 그는 화엄학과 관련한 법장과 종밀 류에 근접하는 상당한 사상적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기도 하다.(소초후서 등은 대원암 간행 화엄소초에 실려 있다.) 

  또한 정토사상과의 관련 속에 『백암정토찬』이란 4운(韻) 100수(首)로 구성된 찬집을 간행하기도 한 성총은 또한 『정토보서』 서문 가운데 "염불이 모든 방편 가운데 최상"임을 말하기도 하였던 바, 이는 그의 스승 취미수초의 정토왕생 사상을 계승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이외에 백암성총은 『치문경훈』에 대한 주석서 『치문경훈주』를 간행하여 널리 유통케 하였던 바, 동시대의 인물로서 편양언기의 문손(門孫)인 월담설제(月潭雪霽:1632∼1704)가 선문수업(禪門修業) 과정으로서 강원 교과과정을 편성하는 가운데 [치문경훈]이 자리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백암성총은 그의 저술 및 찬집 작업을 통해 조선 중후기 불교의 삼문수업(三門修業) 기틀 형성에 기여했으며, 5,000장에 이르는 판각을 통해 불전 간행사업에 노력하기도 하였으니, 이에 『조선불교통사』 가운데 이능화는 "신미(信眉)와 백암(栢庵)은 불서(佛書)를 유통하여 조선의 선(禪)과 교(敎)에 이익을 미침이 실로 많았다"는 말로서 세조(世祖) 당시 불전 언해(諺解)에 많은 공을 남겼던 신미(信眉)와 백암을 견주는 가운데 그의 공과(功過)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