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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1 21:09
불상 빼곤 다 나왔다…고려불교박물관 발굴한 셈
법구 일괄

밀교 성향 도구인 금강저·금강경 주목, 묻은 이유 미스터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 터에서 고려시대 각종 불교공양구 혹은 의식구가 쏟아져 나왔다. 우선 수량이 만만치 않다. 67건 77점에 달한다.

그리고 내역 또한 다양하다.

이들 법구(法具)를 담은 그릇인 청동솥을 필두로 ▲ 청동유개호 1건2점(뚜껑 포함) ▲ 금강저 1점 ▲ 금강령 1건2점(금동설<舌> 포함) ▲ 청동 향완 10점 ▲ 청동 향완 받침 1점 ▲ 청동굽발 18점 ▲ 청동세(세숫대야) 2점 ▲ 현향로(懸香爐. 매다는 향로) 1건2점(뚜껑 포함) ▲ 청동삼족형 향로 1점 ▲ 청동합 3건 6점(각 뚜껑 포함) ▲ 청동 발우 25점 ▲ 청동숟가락 3점 ▲ 청동 수각(獸角) 향로 1점이다.

금속공예 전공인 주경미 박사는 "불상 빼고 다 나왔다고 하면 이해가 쉽다"는 말로 이번 발굴 성과를 평가한다. 물론 과장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그만큼 다종다양하다는 뜻이다. 요컨대 이번 발굴은 고려시대 불교박물관을 발굴한 셈이다.

법구류 출토 장면

그런 까닭에 도봉서원 터에서 발굴된 법구만으로도 제법 면모를 갖춘 전시관 하나를 꾸밀 정도가 된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도봉서원 터 관할 행정당국인 도봉구청이 어떤 의지를 지니느냐에 따라 도봉서원 복원 계획과 맞물려 전시관 설립도 요원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많은 고려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 불교 법구를 출토한 유적은 더러 있다. 우선 1993년 청주 사뇌사(思惱寺) 터에서는 같은 고려시대 각종 법구가 무려 400여 점이 출토된 것을 비롯해 창녕 말흘리 유적과 군위 인각사지 같은 데도 도봉서원 터에 비견할 만한 성과를 냈다.

또 전주 화암사지와 경주 굴불사지·망덕사지, 청주 흥덕사지, 그리고 최근에 조사된 충주 본리 유적에서도 불교 공양구가 쏟아졌다.

불교미술사학자인 최응천 동국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여러모로 보아 도봉서원터 법구는 사뇌사 터 출토 유물과 상통하는 구석이 많다고 지적한다. 기종이라든가 양식 등에서 겹치는 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봉서원터 법구 중에서는 무기 모양의 금강저와 금강저 한쪽 끝에 방울을 매단 금강령이 세트로 출토됐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을 끈다. 이런 사례로는 진주 남성리 유적과 충주 본리 유적에 이어 세 번째 정도로 파악된다.

금강령(金剛鈴)은 현재까지 국내외에서도 유례가 보고되지 않은 방식으로 문양을 장식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고 주경미 박사는 지적했다.

금강령

보통 금강령은 거기에 장식하는 요소에 따라 사천왕령(四天王鈴)과 오대명왕령(五大明王鈴), 그리고 범천·제석천(梵天帝釋天鈴)으로 구분하지만 도봉사터 금강령은 상단에는 오대명왕, 하단에는 사천왕을 각각 장식했다.

금강령과 금강저는 불교, 특히 그중에서도 각종 신비적 의례를 유난히 강조하는 밀교에서 중시하는 법구다. 원래 인도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중국 당나라 시대 이후 활발히 등장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퍼져 나갔다.

이런 금강령 혹은 금강저가 최근들어 잇따라 출토됨에 따라 고려시대 불교에서 밀교가 차지한 위상이 녹록지 않았음을 엿보인다. 이는 고려시대 종교사상사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법구로 가득 채운 기물(器物)을 왜, 누가, 언제 묻었을까?

도봉서원터를 발굴조사한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도봉서원이 우선 조광조를 추념하고자 1573년, 영국사(寧國寺)라는 사찰 터에다가 건립됐음을 주목한다. 조사 결과 이번 불교 법구가 발견된 5호 건물지는 바로 이 영국사라는 사찰의 금당 혹은 대웅전 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데 그것이 발견된 지점이 금당터 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지점이다. 그리고 발굴조사자들에 의하면 법구를 담은 청동솥은 금당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지던 시점에서 묻은 것이라고 한다. 영국사라는 사찰은 조선 초기에 모습이 보인다.

금강저

이로 보아 어느 시점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아무리 늦어도 조선초기, 혹은 그 이전에 영국사를 창건하던 사람들이 모종의 의미를 담아서 이들 법구를 '일부러' 매장한 셈이 된다.

많은 불교미술사학도, 혹은 고고학도가 이런 흔적을 이른바 '퇴장 유구'(退藏遺構)라 해서 전쟁이나 화재와 같은 위급한 시기에 값이 나가는 법구들을 황급히 묻은 흔적이라고 본다.

과연 그럴까?

최응천 교수는 소위 이런 퇴장 유구들에서 일정한 패턴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즉, 그에 의하면 소위 퇴장유구는 대체로 큰 솥이라든가 아니면 대형 종을 용기를 활용해 그에다가 작은 법구류부터 차곡차곡 챙겨 넣고 그 주변에 각종 공양구를 배치한다.

최 교수는 "쉽게 말해 막 때려 넣는 것이 아니라 이삿짐 싸듯이 정연하게 갈무리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청동 현향로

정말로 황급히 대피하기 위함이라면, 퇴장유구들에서 한결같이 이런 정연함이 보이기는 어렵다.

이는 이들이 퇴장 유구가 아니라 모종의 다른 의식, 예컨대 부처를 위한 공양품일 가능성도 내치지 못하게 한다.

흔히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나 유명한 고승의 사리를 안치하는 무덤인 탑을 쌓을 때만 공양품을 넣는다고 하지만, 금당이나 대웅전 역시 부처가 상주하는 성스런 공간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공양품을 내놓았을 수도 있는 셈이다.

도봉서원터 발굴성과는 한편에서는 이런 미스터리를 던지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