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바닷다의 길에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기를 포기한 싯달타, 고타마 붓다의 정신을 우리는 안다. 출가 후, 제국의 반을 주겠다는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제의를 물리친 싯달타는 마가다국의 무력을 배경으로 코살라국에 대한 자민족(自民族) 해방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한다. 그러한 그는 이후 깨달음에 이르른 후에 조차 수많은 샤카족 왕자들을 출가시킴으로서 자민족의 통솔력 약화와 함께, 숙업(宿業)의 논리로서 코살라국에 의한 민족적 멸망조차 대처한다. 그는 차라리 자민족이라는 소국주의(小國主義)적 관점을 멀리한 채, '법에 의한 통치'를 기원하는 가운데 전륜성왕이 아닌 법왕(法王)이기를 자부한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의 현시대적 상황 속에 수많은 감흥들은 승가(僧伽) 스스로가 전륜성왕의 현신이거나 적어도 그 후원자이기를 자원한다. 마치 데바닷타가 아쟈타샤트루(Aj ta atru, 阿　世) 태자에게 제의했던 바와도 같이, 새로운 왕과 새로운 종교지도자가 결탁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립하자는 망상에 동의한다. 그래서 '87년 10월 31일 '노태우 후보 당선 기념법회'를 열기도 한 과거의 주지들은 권력에 아부하는 데바닷다의 길을 걷는다.
한편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삼국에 있어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선봉적 역할을 한 것은 왕실이었다‥‥<중략>‥‥이같이 왕실에 의하여 불교가 강력히 지지·발전하게 된 것은 왕권 중심의 지배체계를 유지하는 정신적 지주로 적합한 때문이었다고 믿어진다" 6)고 한다.  즉 "하나의 불법에 귀의하는 신도의 관념은 하나의 왕을 받든다는 신민(臣民)"으로서 인식되었던 추세는 중국 북방불교의 유입을 전제한 것으로, 여기에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이념이 마련된다.7)
이에 이차돈의 순교, 김대성의 불국사 석굴암 조영, 황룡사 9층탑의 건립, 대각국사에 의한 천태종 부흥 등은 모두 호국(護國)의 이념 속에 등장하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 불법 흥륜(興輪)의 챠크라바르틴(cakravartin), 즉 정치적 전륜성왕이기를 자부한 법흥(法興)왕이 등장하며, 진흥(眞興)왕은 스스로 아쇼카왕이 조성하지 못한 석가 삼존상을 조성하는 인연 있는 나라의 전륜왕임을 자부함으로 황룡사 장육존상을 조성, 그들 모두가 사문(沙門)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리고 4세기이래 여산 혜원(慧遠)의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강조하기도 한 채 승가는 정치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이로서 1948년 5월 승려출신 최범술 및 유성갑의 제헌 국회의원 당선 및 '50년 5월 승려출신 이종도와 허영호, 박성우 등이 2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함으로서 승가는 스스로 전륜성왕의 길로 나서게 되었는 바, 그럼에도 세속의 통치자 전륜성왕이기를 거부한 과거세 고타마 붓다는 숙업의 결과로서 자신 나라의 패망을 말없이 지켜본 채 차라리 세속 정치와 결별한 무국주의(無國主義)의 법왕이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6) 이기백, 『한국사신론』, 서울, 일조각, 1999. p. 77.

7) ibid.

< 목록 > < 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