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원각사

■ 한국불교 수행자의 새로운 모색

◆ 인식 전환(認識轉換)을 위한 담론(談論)
정각 / 동국대 강사

● 서 언

      ● 한국 불교 수행자의 새로운 모색
          - 데바닷다의 길에서
          - 조국(祖國)을 위한 종부성사(終傅聖事)
          - 민중신학(民衆神學)적 아류(亞流)를 지양(止揚)하여
          - 칸트(Kant)의 격률(格率)과 요청(要請)을 넘어서
          - 제2의 결집(結集)을 위하여
          - 소도(蘇塗), 아란야(阿蘭若) 그 역사성(歷史性) 확립의 장(場)

● 맺으며

※서설

붓다의 무기(無記)의 정신은 존재론, 형이상학을 배제한다. 차라리 인식론적 차원 속에서 현상질서에 대한 인식과 그를 통한 삶의 원리를 발견, 그것을 실행할 것을 강조한다. 현상질서의 선행적 인식은 고(苦)로부터 시작한다. 삶의 영속성을 살아가는 가운데 죽음과 태어남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업(業)으로 인한 휩쓸림[輪廻:sa s ra]. 그 윤회적 차원 가운데 업의 청정과 소멸의 원리는 고(苦)의 단멸(斷滅)을 요구한다.
이에 불교는 고(苦)의 인식[苦諦]과, 고의 원인[集諦], 고의 소멸[滅諦],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諦] 등을 통한 해탈의 실천적 원리 즉 사성제(四聖諦)와 함께, 일체개고(一切皆苦)를 기저로 한 연기법(緣起法)의 통찰로부터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의 원리를 바탕으로 업(業)을 청정히 한 채 아공(我空, 法空까지를 포함한)을 통한 윤회의 종식, 아집(我執)을(大乘의 경우 法執까지를) 떠난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르를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에 이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팔정도(八正道)의 실행 1)을 통해 초기불교 수행자들은 끝없는 해탈(解脫)과 함께 궁극적 열반에 나아가기를 희구하였다. 이에 적어도 초기 수행자들은 붓다의 모범에 따른 수행원리에 의해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으리라 이해되며, 이렇게 볼 때 초기불교의 수행자상은 '팔정도의 실행을 통해 열반적정의 경지에로 나아가는 자' 가운데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고금(古今)에 걸쳐 불교 수행의 기본원리로서 인식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궁극적 열반을 찾아 나서는 과정 속에서 "수행자란 탐·진·치의 불길을 잡는 소방수"임에도 불구하고 "소방수이어야 할 수행자들이 중생들처럼 불이 타오를 여건이나 만들고, 타는 불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2)는 한국불교 수행자들에 대한 현시대적 우려는 위 수행원리의 표피에 묻어진 「얼룩」에 해당할 것으로, 그 「얼룩」을 닦아내는 부단한 노력 속에 인식론적 차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 「얼룩」이란 무엇인가? 이는 정견과 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 3) 등 팔정도의 실행 자체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서 생겨난 산물이다. 이에 '팔정도의 실행을 통해 열반적정의 경지에로 나아가야 할 자'로서 현시대 한국불교의 수행자들은 위 팔정도의 원리에 따른 바른 소견과 인식 등으로 스스로 나아가야 할 길을 설정할 때, 현상적 원리의 표피에 묻어진 「얼룩」들은 지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행함에 있어 우리는 기존의 몇몇 주변 인식들을 전환시켜야 할 뿐, 팔정도의 실행을 통해 열반에 이른다는 목표 설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어버이를 사직하고 출가한 까닭은 법계의 평등한 도리에 수순하고자 함(割愛辭親法界平等)"이라는 「자경문(自警文)」 가운데 글을 다시금 상기함은, 시대적 우려 속에서 자기몰락의 길을 걸을 때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하는 시대의 인식자로서 '미네르바의 올빼미 4)가 되어 시대정신의 발흥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수행자의 자각을 일깨워 준다.
옛 수행자들의 삶에 비추어 볼 때, 현시대 한국불교의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몇몇 견해 및 그 실행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방안을 설정해야 할 것으로, '인식 전환'이란 논리로서 우리는 팔정도 실행에 따른 오류의 「얼룩」을 극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八正道의 실행은 동시에 탐·진·치 三毒에 대한 계·정·혜 三學의 원리를 바탕한다. 한편 正見의 慧解脫을 거쳐 正思惟·正語·正業 등의 원리인 戒를 통한 신·구·의 삼업의 청정과, 正命·正精進·正念 등의 노력을 통해 正定의 心解脫에 이르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궁극에 慧를 증득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른 채 열반적정을 증득케 되는 원리의 총체적 관점이 팔정도의 실행 속에 담겨져 있는 한에 있어, 팔정도는 불교 수행원리를 대표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정각, 「불교적 구원관」<『신학과 사상』, vol. 22>), pp. 39∼43.

2) 도법, 「경계해야 할 빈 수레의 요란함」(『선우도량』, vol. 2), p. 5.

3) ① 正見은 두루 가리어 가진 법을 결정하며, 두루 보고 관찰하여 환히 아는 것을 말한다. ② 正思惟[正志]란 心[意]으로 살피어 생각할 만한 것이면 생각하고, 바랄 만한 것이면 바라는 것을 말한다. ③ 正語란 口의 四妙行을 除하고 다른 모든 입의 악행을 멀리 떠나고 끊어 없애어 행하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모으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④ 正業이란 身의 三妙行을 除하고 다른 모든 몸의 악행을 멀리 떠나고 끊어 없애어, 행하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모으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⑤ 正命이란 무리하게 구하지 않고 욕심이 많아 만족할 줄 모르지 않으며, 온갖 기술과 주술의 삿된 직업으로써 생활하지 않고 다만 법으로써 구하여 쓰는 것을 말한다. ⑥ 正精進[正方便]이란 한결같이 꾸준히 힘써 구하고 힘차게 나아가 물러나지도 않고 바르게 그 마음을 항복 받는 것을 말한다. ⑦ 正念이란 따르는 생각은 생각하고 향하지 않는 생각은 등지며, 두루한 생각을 생각하고 되풀이한 마음을 기억하여, 바르게 마음의 응하는 바를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⑧ 正定이란 마음이 머무르고 선이 머무르고 순함이 머물러, 어지럽지 않고 흩어지지 않아 바른 定을 거두어 잡는 것을 말한다.
中阿含經(大正藏 1, p. 469上)

4) 헤겔(F. Hegel)은 그의 『법철학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서문 가운데 "철학이 이성의 회색에서 그 회색을 더해갈 때 생의 한가지 모습이 늙게 되어 그 생의 모습은 젊음을 되찾지 못한 채 단지 인식되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하여 철학에 대한 자기규정을 부여하였던 한편, 절대정신(absoluter Geist)으로서 세계정신(Weltgeist)의 등장을 고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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