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국(祖國)을 위한 종부성사(終傅聖事)

그럼에도 '호국불교의 망령'은 고타마 붓다의 무국주의 정신과 위배되고 있다. 이에 고려조 몽고 침입에 대한 승장(僧將)들의 활동으로부터 조선조 서산(西山)과 유정(惟政)의 승병(僧兵) 운동.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란 호를 수여받은 승병장 서산과, 일본의 덕천가강(德川家康)을 만나고 '가의대부행용양위대호군(嘉義大夫行龍　衛大護軍)'이란 호를 하사 받은 유정(惟政)의 이념 속에 깃든 호국불교의 이상(理想)으로부터 우리는 탈피해야 한다.
물론 사회적 기반 위에 형성된 종교는 사회적 요구와 유리되기 힘들다. 그럼에도 호국을 앞세운 최이(崔怡)와 정안(鄭晏)의 고려대장경 조판사업은 당시 집권자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책략이기도 하였는 바, 수많은 전란(戰亂) 가운데 승장(僧將)들의 위력 속에서 우리는 세속 권력과 야합한, 적어도 그에 부합하려는 종교적 실체 내지 칼을 들고 타인의 생명을 죽이는 무자비(無慈悲)적 세태의 양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정권과 종교. 5·18 광주사태와 10·27법난의 장본인을 화해와 용서의 장으로 끌어온 채 소도(蘇塗)로서 백담사와 조계사를 제공했던 승가의 재빠른 시대착오적 발상 속에서조차 우리는 호국 내지 데바닷다의 이념과 관련된 빗나감을 발견하게 된다.
1961년 7월 조계종은 국방부 군종실장에게 '군종 포교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 1975년 8월 「호국승군단(護國僧軍團)」의 헌장과 종령을 발표한 바 있기도 하다. 이렇듯 생겨난 군승(軍僧)의 망령. 정훈장교(精訓將校)의 역할을 다짐케 될 현 제도 속에 유혈의 전장에 나서게 될 장병들에게 원광(圓光)의 세속오계적 차선(次善)이 아닌, 우리만의 조국을 위한 종부성사(終傅聖事), 예수재(豫修齋) 행함을 자처하였던 것이다.
군승(軍僧)의 기원이 어디 있는가? 이는 중세 십자군전쟁을 위한 전쟁의 독려자로서 생겨나며, 이는 모택동식 인해전술을 위한 종교성의 증표로서 발현되어질 것이다.
붓다께서는 율장 가운데 수행자는 전쟁터에 나서지 말라 하셨다. 또한 그곳에 3일 이상 머물지 말라 하셨다. 그러한 그는 이미 출가 이전부터 국가 수호라는 끄샤트리야로서의 의무, 다르마(Dharma)에 대한 직무유기를 행하고 있다. 즉 콜리야국 국경 사이를 흐르는 로히니(Rohni) 강의 수리권(水利權) 분쟁 해결을 위한 논의에서조차 그는 '전쟁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중략>‥‥살인은 살인자를 낳고, 정복자는 그 자신의 정복자를 만들며 약탈자는 자신을 약탈하는 자를 낳는다'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끄샤트리야의 책무를 포기한 채, 차라리 샤카족 공회(公會)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하는 운명을 택한다. 8)
한편 진평왕 30년(608년), 국경선을 침범한 고구려를 치기 위해 수나라로 군대를 청원하는 걸사표(乞師表)를 지으라는 왕명에 원광(圓光)은 "내가 살고자 남을 죽이려거든 그것은 사문의 도리가 아닙니다(求自存而滅他 非沙門之行也)" 9)라 말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나라 살리고자 생명을 죽이려는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 그 제도에 가입함은 사문의 도리가 아닙니다"라고.
군대는 포교(布敎)의 황금어장이라 말한다. 이에 종단은 포교의 명목 아래 '사문의 도리'라는 담보를 저당잡혀야 하는가? 그렇다면 전도를 중시하는 기독교의 아류 여호아증인은 왜 징집기피의 실태 속에 자신이 감옥에 수감될 지언정 전도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군복무가 의무화된 공업(共業)의 국가제도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불제자들은 스스로가 군승에 자원하는 형태가 아닌 - 피할 수 없는 도리를 위한 것이라면 해군과 공군에 자원하는 것이 아닌 - 사병으로 육군에 징집되는 논리로서 최소한 이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군승의 위상은 교계제도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두어야 하는가?

8) B. R. 암베드카르(박희준, 김기은 역), 『붓다와 다르마』, 서울, 민족사, 1991. pp. 29∼34.

9) 三國史記 卷第4, 「眞平王」條.

< 목록 > < 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