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소도(蘇塗), 아란야(阿蘭若) 그 역사성(歷史性) 확립의 장(場)

절[寺]은 민중의 것이다. 절의 문(門)을 개방하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그럼에도 관광수입과 사찰 재정과의 함수관계 속에 수행자들은 공원 내지 문화유산의 관리인으로, 스스로가 창경원 호랑이가 되는 세태에 살고 있다. 돈을 받게 됨으로서, 그리고 돈을 냄으로서 사찰은 말초적 유희, 감정 배설의 관광문화 정착지, 그 카타르시스의 장(場)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경건성 대신 고기 냄새와 함께 입장표의 반 조각 쓰레기를 남기고 간다.
명동성당은 현시대의 길목에서 종교성의 중심지, 소도(蘇塗)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적어도 94년 이전, 종단개혁 이전에는) 조계사에 운동권 학생들이 잠시의 거처를 마련할라 치면 곧 냉대를 받았으며, 승단(僧團)은 과거 사회적 양심의 고백성사(告白聖事)에 대한 묵비권(默　權)을 행사하지 못했다. 종교의 성지, 소도(蘇塗)는 세속법의 완충지대이다. 인간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신적(神的) 기운이 서려진 성스런 땅. 그럼에도 그곳은 승려들만이 아닌 민중들에 의해 전승된 무형적 자산의 보고(寶庫)이다.
소도(蘇塗)는 세속을 떠난 속리(俗離)의 은둔주의적 상황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적정처(寂靜處), 아란야(阿蘭若) 가운데 존재한다. 아랸야의 수도승이 왜 소방울 소리 들리는 곳,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자리했는가? 이는 민중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장소요, 탁발을 통해 이집 저집을 기웃거려 민중의 생활을 탐색한 채, 이념적으로나마 그들과 빈부(貧富)를 같이하는 곳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역사성(歷史性) 확립의 장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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